글로벌 만화 시장 전체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분야는 다름 아닌 웹툰이다. 물론, 시장 규모로 보면 여전히 주류는 출판이지만, 출판만화의 성장세에 비하면 웹툰과 전자책 시장의 성장세가 무섭다. 일본에서도 이제는 ‘전자만화(電子コミック)’가 빠르게 성장, 2019년 출판만화 비중을 넘어선 이후 단 한 번도 격차는 좁혀진 적이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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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만화 추정 판매금액 추이 (출처: 일본출판과학연구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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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일본에서 전체 만화 매출의 약 2/3은 웹툰을 포함한 전자만화다. 그중에서도 웹툰은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시장이다. <원피스>, <나루토>, <블리치>로 이어지는 소위 ‘원나블’은 물론 <귀멸의 칼날>, <최애의 아이>, <스파이 패밀리>, <주술회전>, <체인소 맨> 등 지난 수십 년간 일본 만화를 지배해온 슈에이샤(集英社) 역시 디지털 전환을 빠르게 이뤘는데, 이미 11년 전인 2014년 디지털 전문 출판만화 앱 서비스 ‘소년점프 플러스(+)’를 내놓은 데 이어 2024년 5월 말에는 웹툰 전문 연재처인 ‘점프툰(Jumptoon, ジャンプTOON)’을 개시해 서비스 중이다.
이처럼 빠르게 디지털화되는 글로벌 만화 시장에서 가장 먼저 격전을 벌인 것은 ‘만화를 그리는 프로그램’이다. 어도비의 포토샵, 메디방페인트, 그리고 셀시스의 클립스튜디오 등이 각축을 벌였는데, 최종적으로 클립스튜디오가 만화가들의 도구로 선택됐다. 가장 빠르게 만화가들의 니즈를 반영하고, 웹툰을 위한 ‘스크롤 연출’에 적합한 캔버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업데이트를 내놓으면서 이제는 웹툰 전문 도구로도 쓰인다. 디지털 전환 속도가 느리다는 편견이 있는 일본에서도 이는 빠르게 진행됐고, 2021년 만화 전문 매체인 ‘만나비(マンナビ)’에 따르면 일본 만화가의 90% 가량이 당시에 이미 클립스튜디오를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만나비, 2021). 이제 ‘툴’의 시대는 끝났다. 그 다음은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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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립스튜디오에서 소개하는 작가들의 사용 후기 (출처: 클립스튜디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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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시간을 압축하는 기술 지금까지 인공지능을 이야기할 때 창작자를 기준으로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았다. 창작의 측면에서 인공지능은 분명 중요한 화두이다. 2025년 5월 11일 미국 저작권청은 “인공지능의 저작권 사용을 공정사용(Fair use)’으로 보기 어렵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펴냈는데, 바로 다음 날 저작권청장이 트럼프 대통령에 의해 해임되면서 논란이 됐다(박찬, 2025, 5, 12). 영국에서도 정부가 인공지능 저작권을 완화하는 법안을 제안했다가 폴 매카트니, 두아 리파 등 유명 가수들의 주도로 여론이 들끓자 뒤로 물러섰다(임대준, 2025, 5, 11). 이처럼 인공지능이 파생한 저작권 문제는 창작의 측면에선 아주 첨예한 대립을 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창작’이 아닌 분야에서 저작권에 대한 주목은 다른 양상으로 나타난다. 대표적으로 번역 분야가 있다. 리디는 자회사 ‘프로디파이’를 통해 지난 3월 AI 웹툰 번역 서비스인 ‘프로디파이’를 출시했는데, ‘프리트레인(Pre-Trained)’ 인공지능을 통해 시간과 비용을 최대 90% 절감할 수 있다고 밝혔다(플래텀, 2025). 네이버웹툰과 카카오엔터 역시 자체 인공지능 기술을 이용한 번역 서비스를 통한 동시 연재 서비스를 염두에 두고 기술개발을 하고 있는데, 다른 언어권에서의 미묘한 문맥이 달라지면 읽히는 것이 달라지고, 타깃 텍스트(목표어)의 문화권에 따라 전혀 다른 맥락으로 읽히는 대사 검수 등을 위해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처럼 번역에서는 인공지능 사용에 대한 창작자들의 반감이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구글 번역, 파파고 등의 번역 서비스가 오랜 시간에 걸쳐 서비스됐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인공지능 번역으로 얻는 효과가 무엇보다 크기 때문이다. 비용과 시간의 감소는 인공지능 번역이 가지는 최대 장점이다. 웹툰 번역을 통한 서비스는 연재 주기로만 보면 평균적으로 2~4주가량 소요되는데, 번역-식자-검수 작업, 그리고 원고 완성 단계를 생각하면 이보다 오래 걸리는 것으로 파악해야 옳다. 시간이 곧 비용이기 때문에, 시간을 단축시키는 인공지능 번역의 도입은 현지화 전략에 있어 디메리트보다 메리트가 큰 전형적인 사업 분야다.
다만 이 가운데 우리와 언어적, 문화적 권역이 다른 지역에서 문화소의 차이, 사소한 뉘앙스의 차이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에 대한 숙제가 남는다. 하지만 인간 번역에서도 이런 손실은 일어난다. 이를테면 <진격의 거인>에서 유명한 대사인 ‘심장을 바쳐라(心臓を捧げよ)’의 뉘앙스는 우리말에서 느껴지는 뉘앙스와는 조금 다른데, 이 미묘한 뉘앙스는 번역에서 필수적으로 손실되기 마련이다. 인간 역시 이런 차이를 완벽하게 메꾸지 못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인공지능 번역이 빠르게 적용될 가능성도 높다.
시간의 단축, 불법공유를 막는다 글로벌 서비스에서 막대한 피해를 내고 있는 불법 웹툰 공유 사이트에 대한 단속 역시 인공지능을 통해 만들어질 새로운 기회 중 하나로 떠오른다. 흔히 글로벌 서비스에서 불법 웹툰 공유범들은 ‘팬심으로 했다’고 말한다. 불법인 줄은 알지만, 아직 서비스가 되고 있지 않거나, 너무 서비스가 느려서 어쩔 수 없었다는 주장이다. 물론 들어줄 가치가 없는 변명이지만, 불법 이용자들 사이에서 호응을 얻어왔던 전략이기도 하다. 하지만 인공지능이 도입되어 아주 빠르게, 실시간으로 동시에 연재가 가능하다면? 이건 생각해 볼 수 있다.
다만 여기서 문제가 되는 건, 웹툰이 ‘복사+붙여넣기’로 간단하게 번역할 수 있는 텍스트가 아니라는 점이다. 웹툰에는 효과음 등 이미지로 표현되는 ‘소리’가 존재하며, 이는 연출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다. 인공지능이 이를 얼마나 ‘매끄럽게’ 번역하고 이미지까지 교체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것이 타깃 텍스트 독자들이 느낄 경험의 훼손으로 이어지지 않는지가 중요하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추가적인 검수와 수정 시간이 필요하다면, 인공지능의 강점인 속도와 효율성이 감소하는 효과를 낳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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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은 양날의 검 이제 문자 중심의 번역은 예술성이 바탕이 된 문학이나 공증을 위한 번역 등 인간이 꼭 필요한 요소가 아니면 어지간한 문맥 파악은 인공지능을 통한 번역과 요약으로 쉽게 진행할 수 있게 됐다. 대화의 뉘앙스나 문맥을 파악하는 능력도 생성형 인공지능은 우리의 기대를 뛰어넘는다. 여기에 이미지를 읽고 수정하는 기능까지 더해져 인공지능이 알아서 웹툰을 번역하고, 이를테면 크롬 등의 브라우저가 제공하는 ‘자동 번역’ 수준의 실시간 번역까지 가능하다면 사실상 번역을 기다릴 필요가 없다.
여기까지는 즐거운 상상이다. 그런데 이 기술이 오픈소스로 제공된다면 어떨까. 우리는 올해 초 중국발 ‘딥시크 쇼크’를 경험했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건, 딥시크가 싼 가격으로 놀라운 수준의 인공지능을 만들고 그것을 ‘오픈소스’로 공개해 모두가 이용 가능하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만약 우리가 상상한 정도의 번역 기술을 갖춘 인공지능이 오픈소스로 공개된다면, 불법 웹툰의 속도가 더 빨라질 것이다.
무조건적인 기술 발전은 양날의 검이 되기 쉽다. 여러 국가에서 일어나고 있는 논의들을 발빠르게 흡수하고, 더 나은 인공지능 활용을 위한 가이드라인을 꾸준히 수정하며 수립해 갈 필요가 있다. 또한 출판을 기준으로 맞춰진 저작권법을 손보고, 온라인 시대의 저작권 침해 범죄에 대한 면밀한 조사와 사회적 파급효과를 조사해 여기에 맞는 처벌 규정을 만드는 등 제도적 정비가 필수적이다.
이런 준비 없이 ‘기술 발전이 가져올 낙관적 미래’에 취해 무조건적으로 최신의 기술만을 채택한다면 우리는 기술에 뒤쳐질까 두려운 나머지 지켜야 할 가치들을 져버리는 우를 범할지도 모른다. 편리한 도구는 반대로 막대한 파괴력을 지녔다는 점을 유념하고, 기술 발전에 초점을 두되 그것을 사용하는 환경을 준비하는 방식으로 제도를 맞춰나가야 할 것이다.
이런 우려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번역에 있어 인공지능은 지금까지 대중의 호응을 받으며 자연스러운 사용으로 이어지고 있는 익숙한 분야다. 글로벌 진출에 있어 번역은 우리에게 단순히 언어 전환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특히 한국어는 사용인구가 적은 고립어이기 때문인데, 글로벌 진출을 위해서는 인공지능 도구의 개발이 가장 든든한 지원군이 될 수 있다. 단순히 웹툰의 해외 진출 문제가 아니라, 여러 콘텐츠 분야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높은 기술집약적 분야가 웹툰 번역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만화 분야 인공지능 번역은 단순히 글자만이 아니라 이미지를 읽고 분석한 후 ‘글과 이미지’를 동시에 수정하는 복합적인 생성이 필요하다. 때문에 기술적으로도 효용가치가 높을 뿐 아니라 기타 콘텐츠로의 확장성 역시 크다. 많은 작품이 주간연재로 연재되고 있다는 점 역시 인공지능 번역의 빠른 발전을 가져올 수 있는 강점이다. 웹툰 분야를 시작으로 해외 진출을 위한 인공지능 번역도구 개발을 지원하거나, 기술에 활용할 수 있는 토큰 바우처, 그래픽카드 지원, 전문 검수인력 양성 등 다양한 지원을 통해 타 분야로 확장해 나갈 ‘인공지능 현지화 도구’ 주도권을 잡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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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L. 02 3150 4818/4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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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ail. research@kofice.or.kr
발행처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후원 문화체육관광부
기획·편집 김아영, 백현지
디자인 7의감각
발행일 2025년 5월 30일
E-ISSN 2714-0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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