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OTT 플랫폼 서비스는 내수 시장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숏폼 중심의 콘텐츠 혁신, AI 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현지화 전략을 바탕으로 동남아시장을 중심으로 ‘양적 확장’에는 빠르게 성공했지만, ‘질적 내재화’에는 여전히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특히 콘텐츠 다양성, 로컬 문화 수용도, 글로벌 브랜드로서 신뢰성을 갖추는 것이 앞으로 해결해야 할 대표적인 과제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이 같은 중국 OTT 플랫폼의 해외 진출은 장단기적으로 한국의 콘텐츠 산업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의 스트리밍 서비스는 유통 경로의 다변화와 글로벌 협업의 새로운 기회를 제공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플랫폼 종속과 IP 주도권 상실, 기술 경쟁력 격차라는 위협도 함께 불러올 수 있다. 따라서 한국 콘텐츠 산업은 독립성과 자율성 그리고 기존에 확보한 글로벌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AI 기술 내재화, 현지 공동 제작, 플랫폼 전략 다변화를 통해 K-콘텐츠 생태계의 새로운 변화를 모색해야 할 시점에 와있다.
1. 중국 스트리밍 서비스의 해외 진출 과정 2018년 전후로 중국 4대 스트리밍 서비스인 아이치이(iQIYI), 유쿠(YOUKU), 텐센트비디오(Tencent Video), 망고TV(MangoTV)가 해외 버전 클라이언트를 출시하면서 해외시장에 진출하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중국 드라마를 중심으로 1,600편에 달하는 콘텐츠를 서비스했으며, 자체 제작 드라마 및 독점 판권을 확보한 해외 콘텐츠도 포함됐다. 이후 2020년 전후로 공동 멤버십 시스템(징둥PLUS+iQIYI, 쑤닝SUPER+Tencent Video 등)과 크로스 플랫폼 협력(화웨이 비디오+YOUKU)을 통해 해외시장에서 이용자 확대를 촉진했다.
2024년부터는 드라마가 아닌 현지에서 제작한 예능프로그램이 동남아 시장에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텐센트비디오의 <CHUANG ASIA SEASON>, 유쿠의 <Asia Super Young>, 아이치이의 <Starlight Boys> 등이 대표작이다. 이 프로그램들은 모두 아이돌 데뷔를 위한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으로, 중국 본토가 아닌 아시아 시장에 맞춰 제작한 콘텐츠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숏폼 드라마가 해외시장에서 약진하면서 수출 콘텐츠 분야의 대표적인 성장엔진으로 자리 잡게 됐다. 또한 중국 OTT 플랫폼은 중국 전통문화, 관광명소, 음식 문화 등을 결합한 융합콘텐츠를 개발하고 해외시장에 확산시키는 전략을 통해 콘텐츠 산업의 외연을 의도적으로 확장하고 중국 관광산업의 활성화에도 기여하고 있다. 이처럼 중국 OTT 플랫폼은 적극적인 해외 진출 전략을 통해 동남아 시장을 중심으로 드라마, 예능, 숏폼 콘텐츠 등 포맷을 다양화면서 플랫폼 인지도 상승과 함께 일정 수준의 시장 점유율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OTT와 VOD 시장 조사 기관 ‘미디어 파트너스 아시아(Media Partners Asia)’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4년 상반기 기준, 중국의 OTT 위티비(WeTV)는 동남아시아 프리미엄 VOD 시장에서 약 8%의 시청 점유율을 기록하며 넷플릭스 다음으로 경쟁력을 보여주고 있다(MPA, 2024). 2025년 5월, 아이치이는 두바이에서 ‘iQIYI 중동·북아프리카센터’ 출범식을 개최하면서, 중국어 및 다양한 글로벌 콘텐츠를 확산하기 위한 창구로 해당 센터를 운영하며 현지 사용자 서비스를 제공하고, 아랍어 영화 및 TV 콘텐츠를 중국에 소개하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발표했다(中国新闻网, 2025, 5, 15). 이는 아이치이가 향후 아랍에미리트와 사우디아라비아를 시작으로 아랍어권 전체로 서비스를 점차 확대할 계획임을 시사한다. 이처럼 중국의 OTT 플랫폼은 동남아 시장에 이어 중동 그리고 아프리카로 시장을 확장해가며 포맷 개발과 현지화 전략의 고도화를 통해 '중국형 글로벌 플랫폼' 브랜드로 자리 잡아가는 중이다. 특히 숏폼 콘텐츠 분야에서 플랫폼 자체의 수익화와 콘텐츠 이용률을 높여 동남아 시장에서 이미 틱톡(TikTok)과 유사한 영향력을 넓혀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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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치이의 ‘중동·북아프리카센터’ 출범식 현장 (출처: 중국뉴스테트워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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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중국 OTT 플랫폼의 해외 진출 전략1) AI 기반 기술 고도화
중국의 OTT 플랫폼은 AI 자막 번역·더빙·추천 알고리즘을 강화하는 것으로 글로벌 사용자들의 접근성과 콘텐츠 소비의 편의성을 높이고 있다. 특히 AI 기술을 활용한 콘텐츠 자막 번역은 제작비용을 대폭 절감하고 있다. AI 모델을 활용한 숏폼 드라마 한 편당 단일 언어 자막 번역 비용은 약 200~300위안(약 3만 8,000원 ~ 5만 8,000원)이고, 10개 언어 번역 비용도 약 2,000~3,000위안(약 38만 ~ 58만 원)에 불과하다. 숏폼 드라마는 AI를 활용한 다국어 번역 기술을 바탕으로 빠른 속도로 전 세계 시장에 확산되며 이윤을 창출하고 있다. 이외도 아이치이와 텐센트비디오는 AI 자동 편집 및 릴스형 영상 재구성 기술 강화를 통해 숏폼 콘텐츠의 전반적인 경쟁력을 높이는 전략을 펼치고 있다.
2) 숏폼 콘텐츠에 대한 집중 투자 중국 OTT 서비스의 글로벌 진출 과정에서 숏폼 드라마의 영향력은 점차 확대되고 있다. 각 플랫폼은 기존의 ‘장편 드라마 중심 모델’에서 회당 1~5분 길이의 숏폼 드라마 제작을 대폭 확대하는 방향으로 사업의 중심을 이전하고 있다. 그 이유는 숏폼 드라마가 투자수익을 빠르게 회수하는 동시에 이용자들의 플랫폼 체류시간을 늘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광고 삽입의 용이성 면에서도 유리하기 때문이다. 또한 청년세대의 콘텐츠 소비에서 숏폼이 주류로 자리 잡아가고 있기 때문에 이 같은 투자는 시장의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한 결과이다.
3) 글로벌 합작과 파트너십 강화 위티비의 경우, 인도네시아와 태국 등에서 현지 스튜디오와 협업하는 방식으로 콘텐츠를 공동으로 제작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인도네시아 현지 IP로 제작된 드라마 시리즈 <연이 끊어진 연(断了线的风筝)>은 방영 후 인도네시아의 일일 활성 이용자 수(DAU, Daily Active Users)를 300% 증가시킨 동시에, 인도네시아 앱스토어 다운로드 수 1위를 차지하는 데 기여했으며, 100만 명에 가까운 신규 유료 사용자를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위티비 인도네시아 지사는 이미 40명 이상의 현지 직원을 고용하고 있고, 그 중 상당수가 시나리오 작가이다. 이들은 주로 현지 시나리오를 엄격하게 심사하는 등 게이트키핑을 통해 선정하여 최종 콘텐츠로 제작, 방송하고 있다. 또 다른 사례로, 텐센트비디오는 동남아 통신사 및 플랫폼과 결제 시스템 연동 및 번들형 구독 등을 통해 해외시장 진입장벽을 낮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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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티비 인도네시아 오리지널 드라마 <연이 끊어진 연>(2001) 포스터 (출처: 위티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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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다각적 수익 모델 개발 콘텐츠 기반 커머스, 라이브커머스, 리워드 광고 등 콘텐츠에 연계된 전자상거래의 기능을 최대로 확대하고 있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특히 망고TV, 텐센트비디오는 자사 플랫폼에 인플루언서를 활용한 라이브 방송을 접목했고, 이를 통해 중국 내 전자상거래 시장 구조와 유사한 사용자 경험을 글로벌 시장에도 추진 중이다. 또한 광고를 시청하면 포인트를 지급하거나, 리뷰 작성, 공유, 콘텐츠 시청 완료 후 리워드를 제공하는 참여형 광고 수익 모델도 함께 도입하고 있다. 이러한 다각화 수익 모델의 개발은 결과적으로 틱톡, 콰이쇼우(Kuaishou)와 같은 기존의 ‘숏폼+커머스’ 융합플랫폼과의 경계를 허물고 있다.
3. 중국 OTT 플랫폼의 해외 진출 한계와 도전 1) 브랜드 충성도 부족 여전히 넷플릭스, 디즈니+ 등 기존 미국 중심의 글로벌 스트리밍 서비스가 글로벌 시장을 선점하고 있는 가운데 중국의 플랫폼은 아직 브랜드 파워가 부족한 편이다. 또한 자체적으로 제작한 오리지널 콘텐츠의 경쟁력과 사회적 영향력 등에 있어서도 제한적이다. 유료 이용자 비중도 아직 낮은 편이고, DAU 대비 수익률도 아직은 낮은 편으로 앞으로 시장 확대를 위해서는 개선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2) 콘텐츠 동질화와 포맷 피로감 중국의 서비스는 시장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이미 시장에서 성공한 프로그램 포맷을 모방하는 경향이 강하다. 결과적으로 유사한 포맷의 콘텐츠들이 양산되면서 해외 이용자 사이에서도 콘텐츠 동질화에 따른 피로감이 증가하고 있다는 불만이 지배적이다. 대표적으로 중국 판타지 로맨스 장르가 OTT 시장에서 성공하면서 플랫폼마다 비슷한 콘텐츠를 대량 제작했던 시기를 꼽을 수 있다(张赫, 2023, 1, 5). 비슷한 시대 배경, CG 스타일, 남녀 주인공들의 초월적 사랑구도까지 끊임없이 반복되면서 국내 시청자들은 ‘겉만 바뀌고 내용은 그대로다’, 해외 시청자들은 ‘스토리 전개가 너무 진부하다’라며 혹평했다. 한때 인기 절정에 올랐던 흥행 장르였지만 시청자들의 피로감은 곧바로 수요 하락세로 전환했다. 드라마뿐만 아니라 예능프로그램, 숏폼 콘텐츠에 이르기까지 콘텐츠 동질화와 포맷 피로감 이슈는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는 문제다. 중국 내 제작진들의 창의력 한계, 플랫폼 기업의 장기적으로 누적된 적자, 그리고 정부의 규제 강화가 서로 맞물리면서 플랫폼마다 효과적으로 차별화 전략을 구현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중국 정부부터 플랫폼 사업자에 이르기까지 중국문화를 해외에 확산시키려는 의지가 강해 콘텐츠마다 이념적 성향이 뚜렷하다. 따라서 글로벌 이용자들은 ‘중국형 콘텐츠’에 대해 일정한 거리감을 유지하려 한다. 이는 콘텐츠뿐만 아니라 플랫폼의 글로벌 확장성을 제약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3) 규제 리스크와 검열 통제 콘텐츠에 대한 심의와 중국 내 콘텐츠 정책은 해외 유통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민족, 역사, 종교, 정치 지도자, 외교 문제 등 중국 당국이 민감하다고 판단되는 소재는 해외에서도 사전 차단될 수 있고, 성적 다양성에 대한 제한, 폭력·미신·초자연적 소재에 대한 제한, 알고리즘에 대한 정부의 개입 등은 결과적으로 글로벌 콘텐츠의 표현의 자유, 창작의 자율성, 문화다양성을 제약하는 구조적 위협과 현실적인 한계로 작용할 위험을 내포한다.
4. K-콘텐츠의 새로운 글로벌 확장 통로로서의 가능성 1) 유통 플랫폼의 다변화 기회 앞서 살펴본 한계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OTT 플랫폼은 K-콘텐츠의 글로벌 유통 채널 다각화 전략을 가능하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중국 OTT 플랫폼이 동남아 시장에서 성공한 사례로는 2022년 중국 사극 <창란결(苍兰诀)>이 대표적이다. 아이치이는 이 작품의 글로벌 버전을 통해 동남아 시장에서 큰 인기를 얻었다. <창란결>은 같은 해 베트남에서 연간 시청 수 1,000만 명을 돌파하면서 가장 인기 있는 중국어 드라마가 됐고, 이후 넷플릭스에서도 인기 드라마로 순위에 올랐다. <경경일상(卿卿日常)> 역시 동남아 시장에서 크게 성공한 아이치이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이다(China Pavilion,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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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사례에 비춰볼 때, K-콘텐츠 역시 기존의 넷플릭스 중심의 유통 구조에서 벗어나, 중국 OTT 플랫폼(위티비, 망고티비, 아이치이 등)을 통해 보다 다양한 유통 경로를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는 궁극적으로 K-콘텐츠의 시장가치를 인상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특히 동남아, 중동, 아프리카 등 지역에서 중국의 OTT 플랫폼은 미국의 서비스보다 시장 적응력과 콘텐츠 수요에 민감하게 반응하므로 한국 콘텐츠 제작자들과 협업할 수 있는 여지가 상대적으로 클 것이다. 그동안 중국 OTT는 자국 콘텐츠 수출에 집중했지만 향후 동남아를 중심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넷플릭스와 본격적인 플랫폼 경쟁을 벌이기 위해서는 품질 면에서 우세를 점해야 하기 때문에 한국 콘텐츠 산업에 대한 투자를 지속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또한 중국 국내 시장을 다시 개방한다면 서비스 시장 규모가 확대되기 때문에 개방의 범위에 따라서 한국 콘텐츠 산업에 대한 투자를 지속적으로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과거와 달리 무질서한 양적 확대보다는 투자금에 대한 질적 관리가 보다 강화될 수 있다. 따라서 한국 콘텐츠 제작사에게 유효한 전략은 중국 혹은 글로벌 OTT 플랫폼과의 협상에 따른 자국 IP 보호와 채널 다양화 방안이 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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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 시장에서 흥행에 성공한 중국 드라마 <창란결> (출처: 아이치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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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숏폼 콘텐츠 협력 및 재편 기회 2024년 초까지, 아이치이의 설립자 궁위(龚宇)는 숏폼 콘텐츠가 기존의 전통적인 콘텐츠와 비교해 미학, 제작 인력, 비즈니스 생태계 등 모든 면에서 매우 다르다는 이유로 숏폼 콘텐츠 산업에 관여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같은 발언이 무색하게도 2024년 9월, 아이치이는 본격적으로 숏폼 콘텐츠 제작과 서비스 개시를 발표했고, 이로써 중국의 4대 OTT 플랫폼 모두가 숏폼 콘텐츠 산업에 뛰어들게 됐다. 아이치이의 변화는 제작비용 회수가 빠르고 콘텐츠 산업 트렌드가 숏폼으로 이동하는 현실을 외면하기 어려웠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틱톡이 발표한 「2024 숏폼 드라마 해외 마케팅 백서(2024短剧出海营销白皮书)」에 따르면, 숏폼 드라마가 해외 시장에서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다운로드 수와 이용자 규모가 크게 증가했고 향후 숏폼 드라마의 해외 이용자가 2~3억 명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TikTok, 2024). 이러한 상황에서 중국의 각 플랫폼은 숏폼 드라마 개발, AI 기술의 적극적인 활용 및 현지화 전략을 기반으로 새로운 콘텐츠 포맷 개발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한국의 콘텐츠 제작자 입장에서도 중국 플랫폼의 기술력 및 자본력과 결합하여 효과적으로 해외시장을 분석하고 그에 따른 새로운 콘텐츠 포맷을 개발할 기회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청년세대를 타깃으로 하는 숏폼 콘텐츠의 공동 개발에 기회가 많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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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숏폼 드라마 이용자 규모 추정 (출처: TikTok for Business 산업 보고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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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한한령 해제 가능성에 따른 직접 진출 기회 2025년 글로벌 미디어 환경의 변화와 한‧중 관계의 재설정 분위기 속에서 K-콘텐츠와 중국 내 스트리밍 서비스의 협력이 재개된다면, K-콘텐츠가 중국 본토 시장에 재진입할 수 있는 중요한 통로를 확보할 수 있다. 이는 K-콘텐츠가 다시 거대한 중국 시장에 진출한다는 점에서 일정한 의미가 있다. 그러나 현재 중국 콘텐츠도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고 중국 시청자들의 문화 소비 행태도 과거에 비해 많이 변화했기 때문에 K-콘텐츠가 과거와 같이 중국 시장에서 큰 성과를 거두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한국 콘텐츠를 포함하여 글로벌 콘텐츠를 소비하는 중국 시청자들은 대부분 도시 중산층 이상의 계층에 속한다. 지난 10년간 중국 경제의 지속적인 성장과 함께 도시 중산층의 소비력과 라이프스타일은 이미 한국과 비견 가능한 수준에 도달했다. 도시 중산층을 배경으로 하는 중국 가족드라마나 트렌디드라마를 살펴보면, 물질적인 면에서 격차를 확인하기 어렵다. 따라서 중국 콘텐츠 시장에서 한국, 미국, 일본 등 해외 콘텐츠로 인정받는 시기는 이미 지나갔다. 최근 중국 소비문화에서 흐르는 ‘궈차오(国潮)’를 단순히 애국주의 현상으로만 쉽게 치부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그럼에도 한국 콘텐츠가 여전히 탄탄한 스토리텔링과 섬세한 감정 연기 및 연출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고 때문에, 콘텐츠 품질관리를 지속적으로 강화한다면 다시 중국 시장에 진출했을 때 성공 가능성은 여전히 높다고 볼 수 있다. 품질 좋은 콘텐츠는 어디서든 인정받기 마련이다.
5. 종속과 경쟁 심화의 이중 압력 1) 플랫폼 종속 리스크 중국의 OTT 플랫폼은 단순한 유통자를 넘어 글로벌 시장에서 IP를 확보하고 이를 기반으로 콘텐츠를 제작·유통해 궁극적으로는 플랫폼 중심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을 장기적인 목표로 삼고 있다. 때문에 한국 시장에서 기존의 넷플릭스와 협업 과정에서 발생한 IP 통제력 상실 및 수익 배분에서 차별당하는 우려가 중국 플랫폼과의 협업에서도 그대로 반복될 수 있다. 따라서 미국, 중국뿐만 아니라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다양한 플랫폼들과의 협업을 확대하는 것으로 유통 창구의 다각화를 꾀하고 이를 바탕으로 K-콘텐츠의 가격 협상력을 높일 필요가 있다.
2) 콘텐츠 주도권 상실 숏폼이 콘텐츠 산업의 새로운 성장엔진으로 부상하면서 중국은 AI 기반 콘텐츠 제작 기술, 클립 자동화 기술로서 시장을 선도하려 한다. 즉 중국의 플랫폼은 AI와 숏폼 드라마를 통해 기존 글로벌 OTT를 우회적으로 추월하려는 계획이다. 따라서 K-콘텐츠 산업이 경쟁력을 확보한 고품질 서사 중심의 전통적인 콘텐츠에만 안주한다면, 미래의 시장에 효과적으로 적응하지 못해 심각한 위기에 놓일 수 있다. K-콘텐츠의 경쟁력을 지속하려면 미국 시장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신흥 중국 시장의 기술혁신과 숏폼 콘텐츠 개발 및 비즈니스 모델의 진화에 대응할 필요가 있다. 시장에 대한 정밀한 모니터링을 바탕으로 K-콘텐츠의 혁신에 반영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한국 숏폼 콘텐츠 경쟁력 확보와 AI 기술 혁신이 가장 시급한 문제이다.
3) 중국 자본의 역진출과 한국 인재의 역류 향후 한한령이 해제되고 한중 콘텐츠 교류가 다시 활발해진다면, 중국의 OTT가 거대 자본과 플랫폼을 앞세워 한국 콘텐츠 산업의 제작·유통에 깊이 침투할 가능성 역시 배제할 수 없다. 이는 한국 OTT 플랫폼의 경쟁력 약화와 산업의 종속성 심화로 연결될 수 있고 더 나아가 대만의 콘텐츠 시장과 같은 산업 공동화(空洞化) 현상까지 가져올 수도 있다. 글로벌화 이후, 대만의 훌륭한 시나리오 작가, 감독, 배우들은 거대한 시장을 찾아 일부는 미국에 진출했고 대부분은 중국 본토에 진출하여 콘텐츠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대만 콘텐츠 산업의 경쟁력은 자연스럽게 약화됐다. 특히 기존에 경쟁력을 갖췄던 방송콘텐츠 산업이 인재의 유실로 자연스럽게 공동화의 길을 걷게 됐다. 한국은 대만과 달리 시장 규모도 크고 중국과 상대적으로 높은 문화장벽이 있어서 심각하게 우려할 필요는 없지만 AI 번역기가 발달하면서 공동제작 과정 등을 통해 문화장벽은 보다 쉽게 허물어질 수 있다. 또한 중국 정부가 제작자의 출신국 모니터링을 약화한다면 제작 인재의 이동은 보다 자유로워질 것이다. 그렇다고 미국과 중국 등 글로벌 시장과 자본을 거부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포스트 글로벌화 시대에 걸맞게 글로벌 자본 및 기술과 효과적으로 협업하면서도 자국 문화 콘텐츠 산업을 보호는 제도적 장치 개발이 필요하다. 관련 제도적 장치에서 주요 키워드는 글로벌 문화다양성 보호일 수 있다.
4) 양국 문화와 규제 충돌의 가능성 중국 당국의 검열과 정치적 기준이 콘텐츠의 유통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K-콘텐츠가 스토리텔링에 있어서 자율성과 다양성을 제한받을 수 있다. 따라서 글로벌 시장 진출 통로는 확장되지만 표현의 자유와 문화적 독립성이 훼손될 우려가 있다. 반대로 진영 갈등이 격화되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표현의 자유와 문화적 독립성까지 훼손하면서 중국 플랫폼을 통해 글로벌 시장에 진출하는 행위는 국내에서 큰 정치적 리스크에 직면할 수 있다. 모든 리스크는 협업하고 있는 양측이 공동으로 짊어지는 만큼 오히려 협상력을 발휘해 접근한다면 더 많은 이익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 콘텐츠 산업은 중국의 OTT 플랫폼을 단순한 K-콘텐츠의 수출 기회로만 인식하는 것에서 한 걸음 나아가 보다 복합적인 접근 방식을 고민해야 한다. 거대 시장과 새로운 기술의 종속을 경계하면서도 효과적으로 협업하는 상호 실리적 전략을 병행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특히 플랫폼·자본·기술 주도권을 놓치면 모든 기회는 종속의 구조로 전환될 수 있음을 주지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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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L. 02 3150 4818/4820
FAX. 02 3150 4872
E-Mail. research@kofice.or.kr
발행처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후원 문화체육관광부
기획·편집 김아영, 백현지
디자인 7의감각
발행일 2025년 5월 30일
E-ISSN 2714-0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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