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팝 산업의 특징 중 하나는, 팬덤이 순전한 소비자-수용자 집단을 넘어 아티스트를 둘러싼 다양한 이슈에 대해 적극적인 행동주의를 보이며, 연예기획사에 의견을 개진하고 요구를 관철시키려는 경향을 보인다는 점이다. 그런데 최근의 한류 소셜미디어 데이터는 이러한 케이팝 시장의 양상을 단순히 기업과 고객 간 피드백 이상의 리스크로 바라볼 필요성을 보여준다. 최근 1년간 하이브의 키워드 언급 빈도는 3위를 차지하고 있는데, 이는 소셜미디어 빅데이터 키워드 언급 빈도에서 부동의 1위를 유지하는 BTS뿐만 아니라 많은 아티스트를 보유하고 있는 만큼 크게 놀라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하이브가 연예기획사 중에서는 유일하게 키워드 언급 빈도 순위에 등장한다는 점에 주목하여 그 의미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트렌드 감성 분석 내 ‘하이브(Hybe)’ 키워드 긍/부정 변화 추이
최근 3개월간 하이브 키워드의 긍/부정 감성 분석을 살펴보면 지속적으로 부정 감성이 긍정 감성보다 높게 나타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뉴진스와의 분쟁 사태가 다소 소강 상태에 들어선 이후 부정적 감성이 비교적 줄어든 추세를 보이고 있지만, 2월 초 뉴진스가 그룹명을 NJZ로 변경할 것을 발표하면서 하이브에 대한 부정 감성이 다시 증가했다. 실제로 국내의 뉴진스 팬들은 X(구 트위터)와 팬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어도어와 하이브의 움직임을 지속적으로 추적하고 비판하고 있는데, 해외 팬들 역시 이에 큰 관심을 보이며 동참하고 있다.
연예기획사에 대한 이러한 팬들의 관심은 최근 여자친구가 데뷔 10주년을 기념하는 프로젝트로 재결합한 데 대한 팬 여론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2021년 하이브의 산하 레이블 쏘스뮤직은 걸그룹 여자친구와의 갑작스러운 전속계약 종료 발표로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계약 종료 과정과 이후 상표권 등의 후속 조치를 둘러싸고 하이브와 쏘스뮤직은 팬들의 큰 반감을 샀다. 그 가운데 최근 여자친구의 재결합 소식이 전해지면서 이 일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2025년 1월 기준, 여자친구의 영문 팀명인 GFRIEND의 온톨로지 분석에서는 하이브가 연관 키워드로 나타나고 있는데, 모든 연관 키워드 중 가장 부정적인 의미망으로 연결되어 있다.
‘여자친구(gfriend)’의 온톨로지 분석
원문 분석을 살펴보면 팬들의 수용 양상을 더 면밀히 이해할 수 있다. 빅데이터 대시보드에서 수집된 한 게시글은 “트와이스가 갑자기 해체한다면 충격이긴 하겠지만, 이젠 웬만해서는 어떤 그룹의 해체나 멤버 이탈도 놀랍지 않을 거다. 여자친구의 해체를 겪은 이후로는 더 이상 충격받을 것도 없다.”라며, 과거 여자친구 전속계약 종료사건에서 일어난 팬덤의 신뢰 훼손 문제를 지적했다. 하이브와 뉴진스의 분쟁 사태에서 하이브가 대중의 부정적인 여론을 맞닥뜨린 것은 과거 이러한 문제들로 인해 축적되어 온 팬들의 반감과도 무관치 않을 것이다.
소셜미디어 빅데이터에서 나타나듯 해외의 케이팝 코어 팬들은 자신이 응원하는 아티스트의 활동을 한국 연예산업에 대한 지속적인 이해를 추구하며 그 맥락 안에서 소비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여자친구의 온톨로지 분석에서 나타나는 르세라핌의 높은 연결 강도도 그에 따른 것이다. 따라서 몇몇 사건에서 야기된 연예기획사에 대한 반감은 다른 소속 아티스트에 대한 반감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
케이팝 팬덤은 연예기획사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행동주의로 점점 나아가고 있으며, 이러한 움직임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 EXO의 멤버 시우민의 출연 제한을 두고 KBS와 원헌드레드 사이에 불거진 갈등에서 외압을 행사한 것으로 지목된 SM엔터테인먼트 역시 이러한 팬들의 반감이 리스크로 작용할 수 있다. 팬들의 이러한 수용 양상은 연예기획사는 아티스트의 브랜드를 관리하는 기업일 뿐만 아니라 스스로가 하나의 브랜드로도 작동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따라서 연예기획사 스스로의 이미지가 소속된 다양한 아티스트에게 미칠 리스크 역시 적극적으로 관리할 필요성이 증대되고 있다.
2. 케이팝 스타 출신의 드라마, 영화 콘텐츠 캐스팅 효과
한국의 드라마와 영화 콘텐츠가 지속적으로 해외시장을 동시에 타겟팅하면서 글로벌한 인지도를 지니고 있는 케이팝 스타들의 캐스팅이 이뤄지고 있다. 한류를 이끄는 여러 장르 중 가장 빠르고 커다란 성장세를 보인 케이팝 아티스트들이 드라마와 영화에 출연하며 작품의 흥행과 인지도를 견인하고자 하는 것이다. <설강화>(2021)라는 작품으로 연기자로 데뷔한 바 있는 블랙핑크의 지수는, 올해 쿠팡플레이와 프라임 비디오를 통해 공개된 <뉴토피아>가 화제를 모으면서 미디어(드라마, 영화) 분야의 키워드 언급 빈도에서 2위를 차지했다. 국내에서는 지수의 연기력에 대한 약간의 논란이 불거졌지만, 쿠팡플레이 콘텐츠 중에서 공개 첫날 역대 최다 시청을 기록했으며 해외 시청자를 대상으로 스트리밍하는 프라임 비디오에서는 글로벌 차트 5위, 총 39개국에서 TOP 10에 오르는 등 준수한 성적을 거두고 있다.
그룹 빅뱅 출신 배우 탑(T.O.P)은 <오징어 게임> 시즌2에 캐스팅되면서 과거 음주운전과 약물 투약문제로 인한 논쟁이 다시 불거졌다. 탑의 온톨로지 분석에서는 해외 팬들 역시 해당 이슈를 상당한 수준으로 인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편 favorite, life 등의 키워드는 가장 강한 연결성과 긍정 감성을 나타낸다. 결과적으로 <오징어 게임> 시즌2는 탑의 과거 논란을 어느 정도 극복하면서 그를 활용한 화제성을 모으는 데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탑(T.O.P)’의 온톨로지 분석
흥미로운 점은, 탑을 둘러싼 해외 팬들의 반응에서 이른바 '캔슬 컬처(Cancellation Culture)'에 대한 언급이 자주 등장한다는 것이다. 빅데이터 대시보드에 수집된 게시글 원문을 살펴보면 “왜 한국 네티즌들은 탑에게 그렇게 차갑게 구는 거야? 그냥 그를 내버려 두면 안 돼? 한국은 선진국인데, 여전히 낡은 사고방식과 편견에 얽매여 있는 사람들이 많아! 그는 네가 분노를 표출할 희생양이 아니야. 그도 너처럼 감정을 가진 인간이고, 삶의 고난을 겪어 왔어. 그런데 대체 무슨 권리로 누군가의 삶을 더 어렵게 만들 수 있지?”라는 의견에서 보듯, 일부 해외 팬들은 탑을 향한 한국 내의 비판적 시각을 지적한다. “다행히도, 수백만 명인 그의 글로벌 팬들이 그를 지지하며 기다리고 있어. 이번 복귀는 그를 비난하는 위선적인 한국 네티즌들에 대한 복수다. 넷플릭스와 <오징어 게임> 제작진에게 박수를 보낸다.”라는 또 다른 게시글에서도 알 수 있듯이, 탑의 캐스팅은 한국과 다른 해외의 문화적 맥락에서 효과가 다르게 나타나기도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 사례들은 케이팝 스타들의 글로벌 인지도가 드라마와 영화 산업에서 상업적으로 유의미한 효과를 가져올 수 있음을 시사한다. 드라마와 영화 콘텐츠 제작자에게 케이팝 아티스트들의 출연은 콘텐츠의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적극적으로 고려할만한 옵션으로 작동하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전략에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앞서 언급한 작품들의 성공은 단순히 케이팝 아티스트들의 인지도에 기댄 것이 아니며 연기력 논란과 배우의 논란은 작품에 불필요한 논란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따라서 케이팝 아티스트의 해외 인지도뿐만 아니라 작품과 아티스트의 적합성 역시 면밀히 고려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러한 현상의 긍정적인 면과 함께 잠재적인 리스크를 인지하고, 연기력이 뛰어난 배우로 입지를 구축한 그룹 엑소의 멤버 디오(D.O.) 등의 사례와 같이 케이팝 영역의 자본을 여러 장르에서 성공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전략을 계속해서 모색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