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했던가. 2019년 역대 최다 관객, 최대 규모를 기록한 한국영화계가 코로나19 팬데믹을 기점으로 급격한 변화를 맞이했다. 전 지구적 재앙에 한국 극장가 역시 관객 수가 급감했고, 그 난 자리를 가리기 위한 고육지책이 이제는 한국 극장 문화 흐름을 바꾸고 있다. 전반적으로 침체기인 한국 영화산업에서 대중과 맞닿는 창구인 극장은 관객 수 하락 위기를 타개하고자 강구책을 찾았고, 그것이 기존 장편영화 상영 이외의 ‘차별화된 콘텐츠 상영’으로 길을 트는 계기가 됐다. 요컨대 한때 장편영화 상영의 전유물이었던 극장에 변화의 바람이 일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이중엔 한국영화의 위기와는 마치 정반대로 현재 비상하고 있는, 이른바 K-콘텐츠의 활용이 눈에 띈다. 극장은 어떻게 이 비상사태에 대응하고 있는가. 그 강구책들을 두루 살펴보면, 앞으로의 극장 문화의 변화도 어렴풋이나마 짐작할 기회가 될 것이다.
가장 도발적인 상영, 숏폼 무비 과거 극장가를 가장 크게 흔든 사건이라면, ‘OTT 독점 콘텐츠 상영’을 꼽을 수 있다. 넷플릭스 영화 <옥자>(2017)가 극장 개봉을 추진할 때, 극장가는 보이콧 움직임을 보였다. 기존 상영작들의 ‘극장 개봉 후 2차 매체 공개’라는 관행을 깨고 인터넷 플랫폼과 동시 공개하는 것이 영화 유통망을 해친다는 요지였다. 이처럼 영화제나 특별 상영 등 특이 케이스를 제외하면 상영의 벽이 다소 높았던 극장은 최근 이보다 더 도발적인 콘텐츠 상영을 진행했다. 바로 숏폼 무비다.
숏폼(short-form)은 일반적으로 1~2분 단위 짧은 영상을 뜻한다. ‘짧다(Short)’와 ‘형태(Form)’를 결합한 단어이므로 이 개념을 그대로 적용하면 숏폼 무비는 쉽게 말해 단편영화다. 세심하게 단편-중편-장편으로 구분할 수 있으나, 통상적으로 단편영화는 러닝타임 50분 이내의 영화를 뜻한다. 단편영화란 단어 대신 '숏폼 무비'라는 새로운 용어가 정착하게 된 원인으로는, 일반적인 단편보다도 더 짧은 작품이 극장에서 정식 개봉 및 상영하는 데다, 좀 더 확실한 콘셉트를 챙긴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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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장착 카메라로 촬영한 <밤낚시> 한 장면 (출처: 예고편 캡처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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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숏폼 무비의 출발선을 끊은 건 문병곤 감독의 <밤낚시>(2024)이다. <밤낚시>는 홀로 밤낚시를 하는 한 남자가 괴이한 현상을 목격한다는 내용이다. 모든 장면을 자동차에 장착된 카메라로 촬영한 독창적인 콘셉트가 돋보인다. 이처럼 독특한 형식을 취한 이유는 현대자동차와 협업한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즉 숏폼 무비는 확실한 콘셉트를 기반으로 자본, 혹은 산업 인사와의 협업을 이끌어 내 기존 단편영화와 분명한 차별점을 둔 것이다. <밤낚시>에 이어 개봉한 <4분 44초>(2022) 또한 그렇다. <4분44초>는 8편의 영화를 엮은 옴니버스 스릴러 영화이다. 이 같은 시도는 이미 <신촌좀비만화>(2014), <무서운 이야기> 시리즈(2012~2016) 등으로 전개된 바 있으나, <4분44초>는 거기에 ‘4’를 콘셉트로 내세웠다. 4분 44초짜리 단편 8편을 모아 44분 영화를 완성한 것이다. 극에서도 4를 강조하며 4라는 숫자를 콘셉트로 내세웠고, 관람료 또한 4천 원으로 책정해 분명한 콘셉트로 관객들의 흥미를 이끌었다. 배우 나문희의 협조 아래 나문희가 주인공인 생성형AI 단편영화를 묶은 옴니버스 영화 <나야, 문희>(2024), 영화의 모든 요소를 생성형AI로 제작한 <엠호텔>(2024) 또한 생성형AI로 제작했다는 확실한 콘셉트를 내세웠다. 이 세 작품은 <밤낚시>처럼 각각 영화사 궁, 배우 나문희, CJ ENM이란 기존 업계 주체들과의 협업으로 탄생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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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야, 문희>의 한 장면 (출처: Kobi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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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기존의 단편영화가 아닌 숏폼 무비라는 형태의 상영은 문화 콘텐츠 소비 행태와 극장가의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2010년대 스냅챗(Snapchat), 바인(Vine), 틱톡(TikTok) 등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은 1분 내외의 짧은 영상을 게시하는 플랫폼으로 숏폼 영상을 유행시켰다. 이 소비 행태는 곧 장편 영상을 게시하는 기존 플랫폼으로도 번졌고, 전체 조회수가 6개월 만에 5조 건 이상을 달성하는 등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오윤희, 2022. 6. 16.). 이처럼 숏폼 영상이 롱폼 영상의 요약이 아니라 새로운 영상 소비 형태로 자리 잡은 결과, 현재 장편영화의 상영시간이 부담되는 이들이 늘었고, 그에 따라 극장 또한 숏폼 콘텐츠의 필요성을 절감해 이러한 기획 콘텐츠 상영으로 이어진 것이다. 물론 이는 단순히 숏폼 콘텐츠의 필요성 때문만은 아니다. 보통 120분 내외의 영화를 상영한다고 가정할 때, 관객의 입퇴장 시간 및 정비 시간을 고려하면 1회 상영당 약 150분이 소요된다. 오전 9시에 극장문을 열어 자정에서 새벽 1시까지 심야 상영을 한다고 가정하면 대략 5~6회 상영만 가능하다. 그마저도 120분 내외일 때 가능한 것이지 상영시간이 이보다 길다면 4~5회로 상영횟수가 준다. 모든 영화가 상영시간을 천편일률적으로 맞추는 것은 아닐 테니, 분명 1회 상영을 할 수 없는 시간대가 생기기 마련이다. 극장 측은 이런 것을 계산해서 최다 상영횟수로 다수 영화를 상영할 최적의 시간표를 짜야 한다. 그것도 관객의 수요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과정에서 한 시간 내외로 편성할 수 있는 콘텐츠가 있다면, 상영관의 자투리 공백을 활용해 극장 전체의 시간표를 짜기도 용이해진다. 즉 숏폼 무비는 관객의 콘텐츠 수요에 맞추는 것은 물론이고 제공하는 극장의 운영에도 분명 도움이 되는 부분이 있는 것이다.
극장의 새로운 먹거리 종결, 콘서트 실황 한편 공급도, 수요도 폭증한 콘텐츠는 ‘콘서트 실황’이다. 201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한 해에 한 편이나 개봉할 정도로 특별한 콘텐츠였는데, 팬데믹을 지난 2023년부터 10편 이상 개봉하는 극장의 단골손님이 됐다. 특히 2024년은 22편 개봉한 것은 물론이고, 그중 1만 관객을 돌파한 편수도 14편에 달한다. <임영웅ㅣ아임 히어로 더 스타디움>(2024)은 약 35만 명을 동원해 콘서트 실황 영화 최다 관객 수 경신, 콘서트 실황 영화 최초 100억 원 매출이라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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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웅│아임 히어로 더 스타디움> SCREEN X 버전 (출처: 예고편 캡처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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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서트 실황 영화의 이와 같은 추세가 눈길을 끄는 건 ‘극장 개봉’으로 거둔 성과란 점이다. 아이돌 문화가 만개한 이후, 인기 가수라 할지라도 콘서트 실황은 방송, DVD, 블루레이, 온라인 동영상 플랫폼 등으로 발매하는 것이 관행이었다. 드물게 개봉하는 콘서트 실황은 대부분 국내 가수가 아니고 해외 가수의 것이었다. 그러다 2020년대 제작 편수 및 개봉 편수가 부쩍 늘었는데, 두 가지 이유가 맞물린 것으로 보인다. 먼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영화 제작 및 극장 방문객 수가 확연히 준 것이다. 일상에서 가볍게 극장을 찾는 관객 대다수가 코로나19로 극장에 발길을 끊고, 제작사들 또한 제작을 줄이거나 개봉을 미루면서 극장은 더이상 영화라는 매체에 의지할 수 없게 됐다. 그래서 등장한 콘텐츠가 인기작 재개봉이나 콘서트 실황, 혹은 강연 프로그램, 상영관을 개조한 특별 공간이다. 여기에 콘서트 실황이 특히 도약하게 된 지점에는 촬영 관련 기술의 비약이 바탕이 됐다. 2013년부터 정착한 4K 해상도 촬영은(설령 질적으로 차이가 나더라도) 스마트폰에 탑재될 만큼 보급화됐으며, 이에 따라 고해상도 촬영이 가능한 카메라가 다양해졌다. 뿐만 아니라 각 기기가 가벼워지는 것은 물론이고 용도에 따라 이동성을 극대화한 기기들이 등장 등장하면서, 다양한 각도에서 실황을 담아야 하는 콘서트 실황 제작에도 이점이 됐다. 물론 그럼에도 이 콘텐츠의 최대 원동력은 K-콘텐츠의 글로벌화, 즉 K-POP의 급부상에 있다. BTS(방탄소년단)의 첫 콘서트 실황 영화 <러브 유어셀프 인 서울>(2019)이 한국에서 34만 명을 동원하고 북미에서 350만 달러, 전 세계적으로 1,000만 달러의 수익을 올린 것은 K-POP의 영향력을 충분히 입증하는 결과였다(BTS의 첫 영화는 <번 더 스테이지: 더 무비>이나 타플랫폼으로 선공개한 콘텐츠이기에 제외한다). K-POP의 비상은 영화의 부재를 채울 새로운 콘텐츠를 갈망한 극장 측의 사정, 기술적 발전으로 보다 다양한 화면을 고화질로 담아낼 수 있게 된 현장의 환경이 맞물려 콘서트 실황 영상 제작을 촉진시켰다. 여기에 부가적인 이유를 하나 덧붙이자면, 코로나19 팬데믹을 기점으로 OTT 이용자가 증가하면서 극장을 찾는 관객 중 특별관 이용자가 확연하게 늘었다. 극장 개봉과 OTT 공개의 간극이 짧아진 시점에서 극장에서 보는 경험을 '빨리 본다'가 아니라 '특별하게 본다'로 무게추가 옮겨진 것이다. 이에 따라 극장 역시 특별관 유행에 원동력이 될 콘텐츠가 필요했고, 콘서트 실황이 이 조건에 적합했다. 콘서트 실황은 스크린X, 체험형 4D, 나아가 2024년 개봉한 <아이유 콘서트: 더 골든 아워>에 와서는 IMAX로 상영포맷을 확장했다. 특히 2차 매체(DVD/블루레이) 등이 가지는 비중이 상당히 적은 한국 영화산업에서 기존의 고정 팬덤 외의 이익을 얻는 방법으로 극장 개봉이 가장 적합하다고 볼 수 있다. 극장은 특별 콘텐츠 개념으로 티켓값을 차등화해 수익을 남기기에 콘서트 실황이 적당했다. 즉 콘서트 실황은 제작사·소속사·극장 모두 손해 볼 것 없는 콘텐츠로 판단, 산업의 새로운 주력 상품으로 부상한 것이다.
이해관계를 가장 빠르게 파악하고 이를 성공적으로 활용한 기업은 CJ 4DPLEX다. 멀티플렉스 CGV의 자회사이자 체험형4D 시스템의 대표격인 CJ 4DPLEX는 다양한 콘서트 실황 영화에 제작 및 배급사로 참여, 콘텐츠를 확보할 뿐만 아니라 해외 진출에도 추진력을 더했다. 각국에서 ScreenX, 4DX 방식으로도 상영한 <방탄소년단: 옛 투 컴 인 시네마>는 전 세계 360만 명의 관객을 모았고(CJ 뉴스룸, 2023. 7. 31.) <블랙핑크 월드투어[본 핑크] 인 시네마>는 930만 달러로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실적을 기록한 걸그룹 콘서트 영화라는 신기록까지 달성(CJ 뉴스룸, 2024. 9. 12.)하는 등 K-POP 콘서트 실황 영화와 4DX·스크린X 상영은 화제성과 매출을 챙기는 원동력이 됐다. 콘서트 실황은 단순한 녹화본이 아닌 실제 공연과 함께 진행하는 ‘라이브뷰잉’이라는 개념으로 확장됐다. 라이브뷰잉은 콘서트를 촬영한 영상을 상영하는 것이 아니라, 해당 공연의 생중계를 극장에서 관람하는 방식이다. 이 같은 라이브뷰잉이 전무했던 건 아니다. 과거 스포츠 국가대표팀 경기, 애니메이션 콘서트, J-POP 콘서트 등에서 하는 생중계가 존재했다. 다만 국내 콘텐츠 관련 라이브뷰잉은 특정 방송사와 협업으로 진행하는, 방송 단체 관람 개념에 가까웠다. 그러나 2022년 BTS의 ‘아미밤 상영회’을 시작으로 국내 가수들의 라이브뷰잉도 점차 확산되고 있다. 라이브뷰잉은 제작사·소속사와 극장의 협업으로 극장에 단독 중계하는 것이므로 보다 오리지널리티를 챙기려는 의지가 돋보인다. 라이브뷰잉이 반드시 극장에서만 이뤄지는 건 아니고 때로는 타 인터넷 플랫폼에서 공동으로 중계하곤 하지만, 제대로 된 영상과 음성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은 보통 극장에 국한되기 때문에 팬들의 구미를 당기게 한다. 2025년 2월 기준 가장 최근 진행한 라이브뷰잉은 ‘TAEYEON CONCERT - The TENSE’인데 국내뿐만 아니라 대만, 태국, 홍콩, 일본 등 아시아 전역으로 진행됐으며 국내는 메가박스가, 인도네시아는 CGV가 담당했다.
이 부분에서 콘서트 실황의 부흥과 별개로 현재 문화계에서 규모가 날로 커지고 있는 뮤지컬이 실황 영화로는 크게 확장되지 못하는 건 특기할 만하다. 현재 뮤지컬 시장은 티켓 매출만 4,651억 원(예술경영지원센터, 2025)에 육박할 정도로 부흥했지만, 실황 영화 제작 편수는 크게 늘지 않았다. 흥행 실적 또한 최대 5만 명 관객에 그친다. 이는 상대적으로 긴 상영시간, 관객이 원하는 캐스팅 조합을 짤 수 없다는 한계, 실제 공연 중계 영상을 활용할 수 있는 콘서트 실황과 달리 공연 실황은 실제 공연 반복 촬영의 난점 등 핸디캡이 있다는 것 등에서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새로운 정답을 찾는 변화의 시기 이 밖에도 극장은 ‘영화’ 상영관이란 기존의 카테고리에서 벗어난 다양한 체험 문화를 울타리 안으로 가져오고 있다. 각 멀티플렉스는 국내외 오페라, 박물관 투어 영상을 상영하는 것은 물론, 실제 큐레이터가 해설하는 프로그램 등 진행하고 있다. CGV는 강연 프로그램이나 상영관을 개조한 클라이밍짐을 공개했으며 최근 메가박스는 뜨개질하면서 영화 관람을 할 수 있는 ‘뜨개방 상영회’를 열었다. 여전히 한국영화의 답보가 지속되는 가운데 극장의 공간을 다각도로 활용하려는 발상이 여러 기획과 이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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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니초 – 코리안 드림> 포스터 (출처: KMD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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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서술한 기존 콘텐츠의 활용 측면에서 보자면 코미디 관련 상영이 가장 눈에 띄는 도전이지 싶다. CGV는 스탠드업 코미디언 대니 초의 쇼를 담은 <대니초 – 코리안 드림>(2023), ‘매드몬스터’, ‘쥐롤라’ 등을 탄생시킨 곽범-이창호 콤비 ‘빵송국’의 공연 <만담>(2025)을 정식 개봉한 바 있다. 2021년 코미디 쇼 <스탠드업 코미디 쇼그맨>을 선보인 전례에 이어 코미디 레이블 ‘메타코미디’와 협업으로 코미디의 새로운 도전을 돕고 있다는 점에서 단순한 위기 타개 이상의 로드맵을 엿볼 수 있겠다. 물론 극장의 본질이라 할 수 있는 영화계의 침체가 지속되는 지금, 극장의 도전이 반드시 큰 성과로 나타나는 건 아니다. 실제로 위의 사례들을 시도한 2024년 결산에서도 국내 멀티플렉스 3사 중 국내 사업만으로 흑자를 달성한 곳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신새롬, 2025. 2. 28). 그러나 지금까지 해온 것을 정답이라고 우긴다면 앞으로 끊임없이 변화할 관객이 낼 문제에 답을 맞히지 못할 것이다. 제출하는 답안지가 언젠가 새로운 정답으로 채점되는 그 순간을, 극장은 고대하고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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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신새롬 (2025. 2. 28.). 길어지는 극장가 침체…"앞으로가 더 걱정". <연합뉴스>.
- 오윤희 (2022. 6. 16.). 유튜브 쇼츠 1년 새 4배씩 성장…Z 세대 호응에 조회 수 5조 돌파. <조선비즈>.
- 예술경영지원센터 (2025). 「2024년 총결산 공연시장 티켓판매 현황 분석 보고서」.
- CJ 뉴스룸 (2023. 7. 31.), BTS 부산 공연 실황, CGV 4DX와 ScreenX로 본다.
- CJ 뉴스룸 (2024. 9. 12.). CJ 4DPLEX, 역대 8월 최고 실적…북미 시장 및 공연 실황 콘텐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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