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가 긴가민가한 용어로 괜히 우리끼리 들떠서 하는 말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었다.” 2003년 이창동 전 문화부 장관의 회고다.1) 과거 믿기 힘든 ‘현상’으로 시작했던 한류는 이제 어엿한 ‘제도’가 됐다. 2000년 문체부 한류지원협력과 신설, 2004년 한류과의 국제실 편입, 같은 해 한류진흥법의 국회 통과가 그를 명징하게 증명한다. 2025년 한류 제도화의 정점에 선 ‘한류진흥법’과 우리에 부여된 과제는 무엇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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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체부 국제문화홍보정책실 국제문화정책관으로 부임하신 지 7개월째입니다. 직전에는 해외문화홍보원 해외문화홍보사업과장으로 계셨고, 10여 년 전 영상콘텐츠산업과에서 영화영상 관련 업무도 담당하셨는데요. 국제문화홍보정책실에서의 반년 간의 여정이 어떠셨는지 궁금합니다. |
제가 2018년에 해외문화홍보원에서 근무를 했었습니다. 당시에는 해외문화홍보원이 문체부의 소속기관*이었는데요. 해외문화홍보사업과장으로 재외한국문화원을 지원하는 업무를 담당했습니다. 문화원을 통해 한국문화를 해외에 알리는 일이었죠. 그로부터 6년 만에 다시 유사한 업무를 하는 국제문화홍보정책실(이하 국제실)에 복귀했는데 여러 면에서 굉장히 많이 변화된 모습을 목격하게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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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문화홍보원은 2024년 초 문체부 소속기관에서 문체부 내 조직으로 편입됐다. 국제업무 총괄기능을 강화하기 위한 직제 개편이자 해외문화홍보원이 설립된 지 50년 만의 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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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와 비교했을 때 어떤 점이 가장 달라졌다고 보시는지요? |
문화원을 통해서 여러 일을 해나가는 것도 여전히 중요한데요. 최근엔 APEC(아시아 태평양 경제협력체(Asia-Pacific Economic Cooperation)이나 G20(주요 20개국, Grop of 20)2)과 같이 국제사회에서 글로벌 문화담론을 만드는 일의 비중이 높아졌습니다. 참고로 올해 10월 말 APEC 정상회의가 천년고도 경주에서 열립니다. 개최지가 경주인만큼 ‘문화’가 주요 테마인데요. 이번 APEC에서는 8월 26일부터 3일간 14개 분야의 장관급 회의가 개최되며, 특히 '문화고위급 대화'가 최초로 신설되어 각국 문화장관들이 참석합니다. 이런 일이 의미 있는 이유는 무엇보다 우리가 ‘한류의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APEC은 ‘경제협의체’이지만 여기에서 문화고위급 대화를 연다는 건 문화가 곧 경제이자 소프트파워임을 의미합니다. 이번 회의가 우리 문화의 위상을 높이고 글로벌 리더십을 강화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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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산업진흥기본법, ‘산업’과 ‘교류’ 사이의 질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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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9월 「한류산업진흥 기본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단 소식을 접하고 나니 이 법에 대한 관심이 대내외적으로 꽤 커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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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에 신설된 한류지원협력과(이하 한류과) 역시 작년 초 국제실에 편입되면서 한류진흥법도 그해 말에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습니다. 올해 4월부터 이 법이 시행됐는데 한류의 범위가 법적으로 정리가 됐어요. 골자는 ‘대중문화에서 한류 연관산업으로의 확대’입니다. 게임, 음악, 영화, 웹툰과 같은 문화콘텐츠 산업뿐만 아니라 K-뷰티, 패션, 푸드와 같은 한류 연관산업, 여기에 전통문화까지 범위를 확대한 것이지요.
결국 국제실이 단순한 문화교류를 넘어서 비즈니스까지 관장한다는 게 눈에 띄게 달라진 부분입니다. 여러 부처가 관련된다는 점에서 부처 간 협업할 일도 많고요. 또 흩어져 있는 한류 관련 업무를 종합하는 계획도 세워야 할 것 같습니다. 제가 부임한 후 7개월 동안 국제실이 본부 내 조직으로서 안착을 준비하는 시간이었다면, 향후에는 한류를 중심으로 글로벌 소프트파워 강국으로 나아가기 위한 여러 일을 힘 있게 추진해야 하는 중요한 시기가 올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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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를 중심으로 세팅’한다고 말씀하신 내용을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지 궁금합니다.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이하 코피스)을 떠올려 본다면, 사실 진흥원은 영화나 시각/공연예술, 특정 콘텐츠 장르가 아니라 이 모든 것을 포괄해 사업을 전개하고 있는데요. 실무를 하다 보면 굉장히 혼란스러운 점도 없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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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피스는 국제실의 가장 중요한 파트너 기관 중 하나에요. 가급적 저희가 하는 일들과 보조를 맞춰서 함께 사업을 추진해 나가면 좋을 것 같습니다. 한류과에서는 한류가 성장하고 진화하는 상황을 반영해 한류 연관산업 지원 기능을 담당하고 있고, 고정된 틀에 갇히기 보다는 변화의 흐름에 걸맞게 호흡을 맞춰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 국제실 내 국제문화사업과에서도 순수예술 장르의 쌍방향 교류 사업을 진행하고 있기에 코피스가 이들을 모두 포괄해서 적극적인 역할을 해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결국 국제실의 희망사항은 코피스가 ‘올라운드 플레이어’로서 한 단계 더 도약하는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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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이나 ‘비즈니스’는 콘텐츠진흥원(이하 코카)의 영역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제기되기도 하고요. 반면에 ‘문화예술 교류’는 비즈니스 영역과는 거리가 멀다는 점에서 기관 자체의 비전과 미션을 수립하기가 굉장히 난해합니다. 말씀을 종합해보면, 문화 간 소통을 최우선 목적으로, 한류와 예술교류를 두루 잘 수행해주기를 바란다는 말씀으로 이해하면 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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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습니다. 코카가 산업 분야에서 전문성을 지닌 비즈니스 특화 기관이라면, 코피스는 순수 문화예술 영역을 기반으로 하면서 이와 동시에 한류의 확장과 함께 성장해 나가야 하는 기관이라 생각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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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진행 현장 (왼쪽부터 김아영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문화교류연구센터장, 김정현 연구원,
김현준 문화체육관광부 국제문화정책관, 권용덕 사무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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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흥법의 세부내용을 살펴보니 정기 한류실태조사라든지 데이터 사업이라든지 코피스나 코카에서 하는 사업들이 눈에 띕니다. 기존에 각 기관에서 진행 중인 사업과 어떤 연결고리를 갖게 되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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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법에 명시된 실태조사는 상당히 포괄적인 의미로 규정돼 있습니다. 한류에 대한 인식 조사를 포함해서 한류산업의 시장 현황까지 포함하는 실태조사인데요. 국가별 한류 이용 조사는 현재 <해외한류실태조사>를 통해 이뤄지고 있으니 그 부분을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나가면 될 것 같습니다. 추가로 한류산업과 연관산업의 범주가 법률 개정을 통해 새롭게 설정됐기 때문에 시장 현황 파악과 같은 조사는 향후 추가로 필요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아직 법 시행 초기 단계이기에 새롭게 연구하거나 지원해야 할 부분이 많을 것 같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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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에 따르면 ‘전담기관’을 지정하게 되어 있는데 어떻게 진행이 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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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드시 하나의 기관만 지정해야 한다는 제한은 없기에 복수 지정도 가능합니다. 전담기관 지정 문제와는 별개로 현재 코피스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지고, 또 확대되고 있습니다. 코피스가 업무를 더욱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제반 환경과 조건을 개선하고 조직 역량을 키우기 위해 저희 국제실과 함께 노력해 나가면 좋겠습니다. 조직에 우수한 인재가 지속적으로 공급될 수 있도록 처우 개선을 비롯한 여러 조건이 현재보다 더 나아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조직 차원의 교육과 훈련도 중요할 거라 봅니다. 코피스가 서울에 위치한다는 장점, 다양하고 매력적인 사업 분야라는 이점, 여기에 근무 환경이 조금 더 개선된다면 훨씬 더 큰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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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피스는 최근 3년간 경영평가를 받아왔습니다. 만약 코피스가 한류진흥법에 따른 전담기관으로 지정된다면, 법정법인화 관련 이슈의 향방을 어떻게 보시는지 궁금합니다. |
법정법인화를 위해서는 법률 개정이 필요합니다. 현재 행정적으로는 불가능하고, 국회에서 논의가 필요한 상황입니다. 장단점이 있기 때문에 코피스의 의견과 부처 내부 의견 모두 중요합니다. 코피스 내부에서도 정리된 의견을 전달해 주시면 도움이 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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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방탄소년단 멤버 전원이 전역을 마쳤습니다. 코피스에서는 ‘AI 활용 한류 빅데이터 대시보드’를 구축해 운영 중인데요. BTS의 완전체 활동 이후 국내외 소셜미디어상의 바이럴이나 데이터 트래픽도 상당히 늘어날 것 같습니다. 한류에 있어서는 워낙 상징적인 그룹인데, 이들과 함께 추진하고 싶은 사업이 있으실지요? |
방탄소년단이나 블랙핑크는 이미 세계적인 수준에 도달한 케이팝 아이돌 그룹이기 때문에 한류에 대한 긍정적 평가나 지속가능성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저희는 정부 부처인 만큼 새로운 케이팝 아티스트가 좋은 콘텐츠를 가지고 지속적으로 등장할 수 있는 든든한 기반, 토대를 마련하는 역할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물론 세계적인 그룹과 의미 있는 협력을 할 기회가 있다면 함께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말씀하신 AI 활용 한류 대시보드 관련해서는 현재 새 정부 국정기조와 궤를 같이 하는 중요한 사업으로 판단됩니다. AI 관련 사업에 대한 지원이 전폭적으로 이뤄지고 있기에 좋은 아이디어나 사업 계획이 있으시면 협의를 통해 사업을 내실화·고도화하는 노력을 함께 했으면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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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한류나우 7+8월호의 키워드가 ‘중국’입니다. 연초부터 한한령 해제 조짐을 다룬 기사들을 비롯해 세간에 여러 이야기들이 나왔는데 과연 실체가 있는 건지, 희망고문으로 끝나는 건 아닌지 의문이 들더라고요. 일본과의 관계도 고려해야 하고요. 중국과의 문화교류를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고민됩니다. |
어려운 질문입니다. 중국은 역사적, 문화적으로 매우 가까운 이웃이지요. 이 때문에 우리에게도 변함없는 중요한 문화협력 파트너라 생각합니다. 특히 중국은 세계 제2위 콘텐츠 시장이고, 일본 역시 세계 3위 콘텐츠 시장이어서 한국이 중국과 일본을 제외하고 문화산업을 논의하기는 어렵습니다. 중국에서 한한령에 대해 공식적으로 언급하진 않았지만, 2016년 이후 케이팝 공연이나 드라마 방영이 상당히 줄어들고 제약이 있었던 건 사실입니다. 현재의 어려움에는 정치·외교·안보 측면의 이슈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이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화교류는 지속돼야 합니다.
‘겨울에 강물이 얼더라도 얼음 밑으로는 물이 계속 흐른다’는 말이 있습니다. 한국과 정치·외교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나라가 있더라도, 문화교류는 또 다른 영역에서 지속돼야 합니다. 저와 같은 문화 분야 종사자들이 그런 역할을 계속 시도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동시에 미국-중국 패권 경쟁과 같은 거대 글로벌 이슈와는 별개로 지리적 인접국가와의 협력은 지속돼야 하고요. '한중일 동아시아 문화도시'나 '한중일 문화장관회의', '한중일 문화교류 포럼‘ 등 우리가 할 수 있는 노력을 지속하면서 여러 국가와 대화 채널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발전시켜 나갈 계획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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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문화교류 정책에 대한 소견을 밝히고 있는 김현준 문화체육관광부 국제문화정책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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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한류나우 구독자 분들이나 한류 정책에 관심 있는 분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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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해외 한국학 전공자 중에 한류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습니다. 싱가포르나 영국이 그러한데요. 영국의 경우 최근 옥스퍼드대학교에서 올해 10월 글로벌지역학부(OSGA, Oxford School of Global and Area Studies)에 한류학 프로그램을 신설한다고 발표했어요. 이 한류학 프로그램 설립을 위해 한국의 도시가스 기업인 삼천리자전거재단이 약 25억원을 기부했고요. 이런 추세라면 여타의 세계적인 명문 대학들도 유사 과정이나 프로그램을 만들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게 되면 한류와 관련된 코피스의 사업, 가령 AI 활용 빅데이터나 트렌드 파악도 더욱 중요해질 겁니다. 각종 데이터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서비스를 적극적으로 제공하다 보면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 이를 필요로 하는 분들이 늘어나고, 사업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릴 수 있는 환류 체계도 보다 탄탄하게 마련될 것이라 기대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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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___________________ 1) ‘한류 직문직답 이창동’, <한류와 문화정책>(김아영, 2018). https://www.archivecenter.net/hallyuresearch/archive/srch/ArchiveNewSrchView.do?i_id=126757 2) 회원국 21개.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한민국, 독일, 러시아, 멕시코, 미국, 브라질, 사우디아라비아, 아르헨티나, 오스트레일리아, 영국, 아프리카연합, 유럽연합, 인도, 인도네시아, 일본, 이탈리아, 중화인민공화국, 캐나다, 튀르키예, 프랑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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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L. 02 3150 4818/4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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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ail. research@kofice.or.kr
발행처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후원 문화체육관광부
기획·편집 김아영, 김정현
디자인 7의감각
발행일 2025년 7월 22일
E-ISSN 2714-0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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