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여름, 한류는 중국 시장 재진입의 기회를 맞고 있으나 ‘한한령’의 전면 해제 가능성은 여전히 낮다. 일부 도시의 콘텐츠 소비 회복과 정책 유화 흐름은 긍정적 신호이지만, 정치·경제적 변수는 여전히 상존한다. 특히 최근 10년간 변화한 중국의 소비자 성향과 플랫폼 환경, 로컬기업의 성장 등을 고려할 때 단순 규제 해제만으로 성공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한국 문화콘텐츠 기업은 한한령 해제라는 외생변수에 의존하기보다 지역별 소비 특성과 정책 여건에 맞춘 차별화된 진출 전략과 협력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상하이·베이징은 전략적 요충지이며, 광둥·장쑤·산둥·저장은 균형 있는 산업 기반과 수요를 갖춘 유망 지역이다. 후베이·후난·쓰촨 등 중서부 지역도 정책 인센티브와 문화클러스터를 바탕으로 새로운 성장 가능성을 지닌다. 궁극적으로 중요한 것은 한한령의 해제 여부가 아니라 그 이후를 대비하는 전략적 태도이다.
‘한한령’ 해제, 중국 시장을 여는 만능열쇠?
지난 10여 년간 한중 관계의 부침은 한국 문화콘텐츠 산업에 중대한 도전과 기회를 동시에 안겨주었다. 특히 2016년 사드(THAAD) 배치 이후 사실상 비공식적으로 시행된 '한한령(限韓令)'은 K-콘텐츠의 중국 내 유통과 소비에 큰 제약 요인으로 작용했다. 중국은 2023년 기준 3,281억 달러 규모로 세계 2위의 콘텐츠 시장이다. 향후 5년간 연평균 9.07%의 높은 성장을 보여 1위인 미국과의 격차를 빠르게 좁혀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한국의 문화콘텐츠 수출에서 중화권(중국·홍콩·대만)이 차지하는 비중은 2023년 33.5%에 달할 정도로 여전히 의존도가 매우 높기에 한한령 해제에 대한 관심은 당연하다.
2024년 말 미묘한 외교적 완화 국면과 더불어 국내에서는 한한령 해제에 대한 기대감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그러나 2025년 여름 현재, 한한령의 전면적 해제 가능성은 여전히 희박하다. 실제로 한한령은 정치·외교적 변수뿐만 아니라, 중국 내 자국 문화 보호주의, 국수주의 정서, 대내 결속 강화라는 전략적 맥락에서 유지됐다. 특히 애국소비와 중화사상이 강조되는 현재, 외국 콘텐츠의 대대적인 유입은 내부 불안 요인으로 간주할 가능성도 있다. 다만, 정치적, 경제적 필요에 따라 게임, 애니메이션, 공연 등 일부 분야에서 제한적이고 점진적인 해제가 진행될 가능성은 존재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설사 한한령이 전면 해제된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곧 한국 문화콘텐츠의 중국 내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한류 전성기였던 2010년대 초반과 비교하면 현재 중국 문화콘텐츠 시장은 질적, 양적으로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인다. 중국 소비자의 취향은 빠르게 변했으며, 로컬 플랫폼에서 자국 콘텐츠의 생산과 소비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중국 로컬 콘텐츠 기업들은 기술력과 자본력 모두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최근 <검은 신화: 오공(Black Myth: Wukong)>과 <너자 2(NeZha 2)>와 같은 시장성공 사례는 중국 기업의 뛰어난 기술력과 창의력을 보여준다. AI 기반 콘텐츠 추천, 빅데이터 분석을 통한 타깃 마케팅 등은 한국기업에게 더 이상 중국을 '문화 소비시장'이 아닌, '경쟁이 치열한 전장'으로 인식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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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신화: 오공 (Black Myth: Wukong)>
(출처: 네이버 게임) |
<너자 2(NeZha 2)>
(출처: CM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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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한령을 넘어서는 틈새시장, 중국의 지역시장에 주목하라
이러한 변화 속에서 한국 콘텐츠 기업이 선택해야 할 전략은 '한한령 해제'라는 외생 변수에 대한 수동적 기대를 버리는 태도이다. 콘텐츠 본연의 경쟁력을 갖추는 것이 장기적으로는 더욱 중요하다. 이는 고품질 영상이나 화려한 배우를 넘어서 중국인의 정서와 시대적 흐름을 읽어내는 스토리텔링, 공감할 수 있는 캐릭터, 그리고 현지화된 유통 전략 등을 포함한다.
이와 함께 중국 시장의 특수성을 고려하여 지방 도시를 주목해야 한다. 많은 이들이 중국 시장을 하나의 단일한 공간으로 상상한다. 그러나 중국은 결코 하나의 ‘통일된 시장’이 아니다. 오히려 서로 다른 제도, 태도, 소비 습관, 검열 기준을 가진 ‘수십 개, 수백 개의 지역시장의 집합체'에 가깝다. 한한령의 틈새 또한 지역마다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이제는 “중국에 진출할 수 있을까?”가 아니라 “중국의 어떤 지역이 진출에 적합할까?”라는 질문을 던져야 할 때다. 중국은 중앙정부의 강한 통제 하에 있지만, 실제 콘텐츠 유통 및 소비는 지역 정부의 재량과 산업 환경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인다. 한한령 이후에도 일부 지역은 한국 콘텐츠와 제품의 유통을 사실상 허용해 왔으며, 최근 변화는 그러한 지역 편차를 더욱 확대하고 있다.
필자는 중국 본토 소재의 31개 성(省)급 행정단위의 문화콘텐츠 관련 기업 수 및 앵커기업*의 존재 여부, 예술 공연 관객 수와 케이블 TV 이용자 비중, TV 드라마 및 애니메이션 방송 현황, 시청각 제품·음반·전자출판물의 출판 규모 등 데이터와 문화콘텐츠 산업육성 정책, K-콘텐츠에 대한 우호도 등을 종합적으로 비교할 때 우리가 우선하여 주목할 만한 지역시장으로 다음 지역을 추천한다.
*앵커기업: 특정 산업이나 지역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기업으로 해당 산업의 발전을 촉진하고, 일자리를 창출하며,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대표기업(Spencer, G.M., 20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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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주요 문화콘텐츠 타깃 지역(출처 : 저자 작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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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핵심 전략 거점인 상하이와 베이징에 주목해야 한다. 상하이는 국제금융 및 소비 중심지이자 외국 문화 수용에 있어 중국 내에서 가장 개방적인 도시 중 하나이다. 특히 2024년 11월 한국 여권 소지자의 중국 무비자 입국 허용 이후 상하이의 유명 관광지는 한국 관광객으로 넘쳐나면서 한국 스타일에 관한 관심도 증가했다. 한편 정치 중심지인 베이징은 콘텐츠 검열이 가장 엄격한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2024년 말부터 비공식 채널을 통한 한류 소비가 증가하고 있다. 두 도시 모두 영화, 방송, 게임, 플랫폼, 공연예술 등을 망라해 해외 진출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유명 대기업이 다수 포진하고 있어 협력의 기회가 많으며, 중국을 대표하는 정치·외교 또는 경제의 중심지라는 상징성과 영향력이 존재하는 이상 중국 시장 진출의 전초기지로써 활용할 필요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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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로 주목할 지역은 광둥(广东)성, 장쑤(江苏)성, 산둥(山东)성, 저장(浙江)성으로 구성된 균형성장지역이다. 이들 지역의 공통된 특징은 2024년 경제 규모가 중국에서 1~4위를 차지할 정도로 거대하며, 산업 기반과 소비수요가 균형을 이룬다는 점이다. 광둥성은 현재 첨단제조업이 발달한 지역으로만 알려져 있으나 중국 최대의 플랫폼인 텐센트를 중심으로 한 문화콘텐츠 산업생태계가 조성돼 있고 젊은 소비층을 중심으로 새로운 콘텐츠 소비와 메타버스, 굿즈 소비의 실험장이 되고 있다. 또한 홍콩과의 연계를 통해 외국 콘텐츠 유통 플랫폼을 다변화하고 있다. 장쑤성은 우리에게 삼성, LG, 하이닉스 등 제조업체의 생산기지로만 알려져 있으나, 2023년 문화콘텐츠산업에 종사하는 기업 수가 중국 1위를 차지할 정도로 관련 산업이 발달해 있다.
산둥성은 1992년 한중 국교 수립 이후 30년 넘게 우리 기업이 집중적으로 진출해 온 지역인 만큼 한중 교류 기반이 견고하며 지리적, 문화적 인접성으로 관광, 문화 유입에 강점이 있다. 저장성은 알리바바와 연계한 디지털 문화산업 벨트를 형성하고 있으며, 콘텐츠 제작, 유통, IP 활용 부문에서 외국인 투자 기업 유입에 적극적이다. 따라서 디지털 콘텐츠 클러스터 연계 및 전자상거래 협업을 통해 높은 성공 가능성을 기대할 수 있다. 이들 지역은 각각이 인구와 경제 규모 면에서 일국(一國)에 비견될 수 있을 정도로 규모가 크다. 따라서 해당 지역과의 협력이나 진출을 고려할 때는 더 세부적인 타깃도시 탐색 또한 요구된다.
마지막으로 주목할 지역은 쓰촨(四川)성, 후베이(湖北)성, 후난(湖南)성으로 구성된 중서부 내륙의 신흥 성장 지역이다. 이들 지역은 균형 성장 지역보다는 경제 규모나 문화콘텐츠 산업에서 위상이 낮으나 전반적으로 한국 문화콘텐츠에 대한 수용도가 높고 중서부권역에서 영향력이 크며 문화클러스터와 정책 인센티브가 결합되어 외국 기업과의 협력에 적극적인 편이다. 일례로 쓰촨성은 대형 공연 유치를 위한 인센티브 정책을 정비하고 있으며 전통문화와 현대적 콘텐츠의 융합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테마형 콘텐츠 전략에 적합하다.
이러한 지역적 접근은 단순한 틈새 공략이 아니라, 오히려 정치 리스크를 회피하고 장기적인 성장을 도모할 수 있는 현실적인 전략이다. 특히 지방정부는 중앙정부보다 실용적 판단에 기반해 외자 유치를 결정하며, 최근에는 지방정부의 재정난으로 인해 하드웨어보다 소프트웨어, 대규모 인프라보다 수익성 있는 콘텐츠 투자에 더욱 높은 관심을 보인다. 이는 한국 콘텐츠 기업에 기회이자 도전이다. 지방정부가 수익 가능성을 중요시하는 만큼 매력적이고 시장성 높은 콘텐츠를 제시해야 한다. 정책적 인센티브, 공동 프로젝트, 로컬 파트너십을 적절히 활용한다면 중앙정부의 리스크를 분산시키는 동시에 지역 내 충성도 높은 팬층을 확보할 수도 있다.
한류의 재도약, 성공은 ‘디테일’에 달렸다
2025년 여름, 한류에 있어 중요한 변곡점이 도래했다. 외교적 긴장 완화, 일부 도시의 콘텐츠 소비 회복, 그리고 지방정부의 문화정책 변화는 ‘한한령 이후’를 모색하는 한국 문화콘텐츠 기업에 다시 한번 중국 진출의 희망을 품게 한다. 그러나 이 문은 극히 제한된 이들에게만 열릴 가능성이 높다. 오직 준비된 자만이 그 문턱을 넘을 수 있다.
지금 한류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우리는 여전히 매력적인가?” 그 대답은 과거의 향수가 아니라, 오늘의 전략과 내일의 콘텐츠로 증명되어야 한다. 한한령 해제 자체는 외생 변수 중 하나에 불과하다. 진짜 중요한 것은 어떤 환경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콘텐츠의 ‘자생력’이다. ‘중국에서도 통할 만한 콘텐츠’가 아니라 ‘중국 소비자가 보고 싶어 하는 콘텐츠’를 만드는 것. 그때야 비로소 우리는 다시 중국 시장의 문을 열 수 있다.
중국 시장의 재진입을 모색한다면, 그 출발점은 더 이상 베이징이나 상하이 같은 중심 도시에만 국한해서는 안 된다. 중앙정부의 규제 리스크를 분산하고, 도시별 소비 성향과 문화 생태계를 반영한 ‘지역 기반 전략’이 필요하다. 지방정부의 문화정책과 연계한 파트너십 구축을 위해 보다 적극적으로 어필해야 한다. 공동 제작, 공연, IP 교류 등 지방정부의 문화산업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외자기업 대상 인센티브 제도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
상하이, 베이징에 머물러 있지 말고 광둥성의 선전(深圳)과 광저우(广州), 장쑤성의 난징(南京), 산둥성의 칭다오(青岛), 저장성의 항저우(杭州), 쓰촨성의 청두(成都), 후베이성의 우한(武汉)과 후난성의 창사(长沙) 등 각 지역에서 문화클러스터가 형성된 유망도시에 실질적 거점을 두고 체험형 콘텐츠로 지역사회와 상호작용하는 것도 고려해 볼 수 있다. 변화하는 중국 시장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면서 더 정교하게 전략을 수립할 때 한류의 재도약이라는 기회의 창을 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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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ail. research@kofice.or.kr
발행처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후원 문화체육관광부
기획·편집 김아영, 김정현
디자인 7의감각
발행일 2025년 7월 22일
E-ISSN 2714-0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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