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무비자 정책 시행 이후 베이징과 상하이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코로나 시절 3주간의 호텔 격리를 떠올리며, 이번처럼 '마음의 준비'만으로 중국행을 쉽게 실행할 수 있는 상황이 참 생경하게 느껴졌다. 상하이에 도착해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한류의 부활이었다. 난징루 거리 곳곳에서 들려오는 한국어, 한글로 된 안내판들, 그리고 한국 관광객들로 붐비는 한식당과 K-브랜드 매장들. 와이탄의 야경은 여전히 화려했지만, 진짜 변화는 한국 문화가 이 도시에 다시 스며들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일정을 마친 후 개인적으로 방문한 난징동루에서는 상하이가 왜 한류 재부상의 최적지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일본 애니메이션 굿즈샵 '百联ZX(TAMASHI NATION STORE)'가 성업하고, 2024년 한 해에만 전국적으로 극장수입 1억위안 이상의 일본 애니메이션 7편이 큰 성공을 거둔 것처럼, 이 도시는 아시아 문화 콘텐츠를 가장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곳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 주인공이 다시 한류가 되고 있었다. 무비자 정책이라는 제도적 변화가 상하이라는 글로벌 도시의 개방성과 만나 어떻게 한류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고 있는지, 그리고 이것이 한류의 지속가능성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무비자가 부른 변화, 상하이에 스며든 한류 라이프스타일
상하이에 한국(韓)이 다시 흐르기(流) 시작한다. 한국인 여행객의 증가와 함께 도시 이곳저곳에서 한국어가 들려오고 유명 훠궈집 외부에는 한국어 안내문이 설치됐다. 이런 변화는 중국 정부가 한국 등 9개국 국민에 대해 '15일간 단기 무비자 입국'을 허용한 2024년 11월 8일부터 시작됐다. 이후 한국을 포함한 38개국의 무비자 국가 체류 기간이 30일로 확대되자 체류 장벽은 더욱 낮아졌고(중화인민공화국 외교부, 2024), 급기야 12월 17일 중국 국가이민관리국(国家移民管理局)은 '240시간(10일) 환승 무비자' 제도를 발표하고 즉시 시행에 들어갔다. 도시는 바로 활기를 띠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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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 주광옥훠궈 인민광장점의 한국어 안내판 사진(출처: 네이버 블로그(@김자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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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중국으로의 단기 여행도 폭증했다. 인천에서 비행기로 두 시간 만에 넘어온 여행객은 비행기에 오를 땐 그저 관광객이었으나, 착륙과 동시에 잠재적인 문화 소비자로 탈바꿈한다. 단순히 입국 규제 완화라는 정책적 변화가 도시의 문화 생태계 전체 분위기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숫자도 이를 증명한다. 2025년 1분기 상하이를 찾은 외래 관광객은 174만 명이며, 그중 외국인이 126만 명으로 전년 대비 무려 62% 급증했다. 이중 한국인 관광객은 전체 외국인 관광객의 16%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한동안 불빛이 꺼졌던 홍취안루(虹泉路) 쇼핑몰이 다시 네온을 밝히고, 상하이 곳곳에 한글이 가미된 간판들이 조용히 모습을 드러낸 것도 이 때문이다. 샤오홍슈(小红书)에서는 '한국인이 많이 찾는 상하이 거리'라는 주제를 다루는 체험기 · 맛집 지도 · 브이로그 노트가 활발히 공유되고 있으며, 현지 언론은 이를 재인용해 '한류문화의 새로운 랜드마크(韩流文化新地标)'로 부각하고 있다. 이처럼 상하이로 여행객이 몰려들고 한류 콘텐츠가 뒤따라오면서, 도시 전체가 새로운 활력을 되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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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소셜미디어(SNS) 샤오홍슈(小红书), 도우인(抖音)에 올라온
한국브랜드 젠틀몬스터 상하이 팝업 매장 사진(출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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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중국에서의 이번 한류 재등장은 이전과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특히 상하이에서의 한류 소비는 이제 음악에서 화장품으로 연결되던 과거의 단순한 흐름을 벗어났다. 미슐랭 별을 획득한 고급 한식 다이닝부터, 필라테스를 한국식 요가라 부르며 배우는 수업, 케이팝 커버 축제까지 한류는 이제 단순한 상품이 아닌 도시의 삶 속으로 깊숙이 스며든 라이프스타일이 됐다. 이제 콘텐츠는 단순 관람의 대상이 아닌 생활 속의 경험으로 소비되고 있는 것이다.
콘텐츠 플랫폼의 변화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중국 내 한류 콘텐츠 소비가 웨이보(微博)나 아이치이(爱奇艺) 같은 기존 플랫폼에서 빌리빌리(哔哩哔哩), 샤오홍슈(小红书), 도우인(抖音) 등 숏폼 중심의 앱으로 이동하면서 한류 콘텐츠는 더욱 직관적이고 감각적인 형태로 변모했다. 이제 한류는 단지 '보는 것'을 넘어 '생활의 한 방식'으로 자리 잡고 있다.
중국 내 정책 또한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지난 5월 주상하이총영사관과 상하이시상무위원회는 협의 보도자료를 통해 스마트시티 및 K-디자인 전시 포럼인 'Smart Life Week 2025' 개최를 공식 발했다. 또한 9월 26일 하이난 싼야 스포츠스타디움에서 열릴 예정인 대형 케이팝 공연 '드림콘서트'도 중앙 정부 차원에서 실무 허가를 받아 확정됐다. 이는 중국 당국의 시선이 한류를 단순한 한국의 수출 콘텐츠가 아니라 실질적인 양국 문화 교류로 받아들이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인터넷에서도 관련 단어나 문구가 증가하고 있다. '중국 국내에서 한국을 즐긴다'는 개념의 '假装在韩国(한국에 있는 척)' '打卡首尔夜市(한국식 핫플장소 인증)'와 같은 해시태그가 늘어나고 있는데, 특히 小首尔(작은 서울)과 韩国街(한국거리) 등 단어는 행정·관광 홍보 자료에도 고정적으로 쓰이는 단계에 진입했다.
산업계 역시 이 흐름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도우인(抖音)은 '城市生活节•上海(도시생활•상하이)' – '朋友侬好(친구야, 안녕)'와 같이 콘서트 실황과 도시 브이로그를 결합한 콘텐츠를 동시 송출하는 새로운 실험에 나섰고, 여행사들은 '상하이-서울 왕복 크루즈와 케이팝 패키지'를 연계한 여행 상품을 활발히 소개하고 있다. 결국 15일간의 무비자 시행으로부터 시작된 정책 변화가 국가 단위의 문화 콘텐츠 산업이 기능할 수 있도록 상황을 변화시킨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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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우인(抖音) ' 朋友侬好(친구야, 안녕)' 포스터(출처: 解放日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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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유지에서 거점으로: 중국 무비자 정책과 한류의 지속 가능성 전략
정책과 함께 변화하는 중국 시장을 바라보며 상하이 등 중국 대도시를 기점으로 하는 글로벌 한류 마케팅 전략을 고민해 본다. 주목해야 할 대상은 구미·아시아 등 제3국에서 중국을 경유하는 환승객이다. 푸둥공항 등 대도시 소재 공항 240시간 무비자 창구를 이용하는 장거리 여행객 가운데 일정상 한국을 경유하지 못하는, 한류 소비자가 구성원으로 있는 가족 및 소규모 단위의 인원들을 대상으로 한 활동이다.
먼저, 중국 내 대형 케이팝 행사가 열리는 도시를 중심으로 무비자 체류 외국인을 겨냥한 '중국 내 K-문화 투어' 상품 출시를 추진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상하이·베이징·광저우의 대형 복합몰에 한류 체험존을 만들어 케이팝 랜덤 플레이 댄스, 전통 한복 스냅 촬영, 한국 스트리트 푸드 체험을 묶은 일일 패키지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것이다. 이는 중국 대도시를 단순한 '통과 지점'이 아닌 '글로벌 한류 소비의 3차 시장'으로 재맥락화하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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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상하이의 한 쇼핑몰에 마련된 케이팝 아이돌 체험센터(출처: SCMP, 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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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그동안 한국 엔터 기업들이 중국 내 한류 홍보를 해당 국가 위주로만 추진하던 구도를 벗어나 다국적 소비로 전환시킬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또한 한국 정부 차원에서도 중국 환승 무비자 정책과 연계하여 서울 · 도쿄 · 상하이 등 아시아 대도시를 연결하는 'K-컬처 벨트' 구축을 통한 한류 문화 확산 정책 청사진도 가능하다.
한국 기업과 정부는 중국의 무비자 정책 확대에 대해 일시적인 관계 개선 신호나 자국의 소비 진작을 위한 정책이라는 단순한 관점을 탈피하여, 아시아 소재 대도시 단위의 서비스 · 모빌리티 · 숙박 · 푸드테크 등 다양한 접점이 교차하는 국가 차원의 혁신 실험장으로 적극 활용해야 한다. 한류가 '한국에서만 소비되는 문화'가 아니라 '글로벌 차원에서 경험되는 세계의 공용 문화'로 진화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는 한류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는 동시에 현지 도시의 지역 소비를 촉발하여 상호 국가 간 경제 이익 구조로도 기능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청사진에도 불구하고 중국을 중심으로 한 한류의 시장 재부흥에는 몇 가지 예상 가능한 어려움 또한 존재한다. 지금과 같은 변화는 상하이 등 중국 대도시 상황에 국한될 가능성이 크다. 하얼빈의 빙등제에서는 K-패션이 단순 조명 역할에 그치고 있으며, 연변 카페 골목에서의 K-디저트는 그저 '맛집 스탬프'를 받는 수준에 머문다. 똑같은 무비자 정책이라도 지역의 문화적, 경제적 토양에 따라 한류를 수용하는 양상이 다르다. 상하이와 같은 대도시의 한류는 도시 정체성과 결합해 '내장형'으로 발전한 반면, 다른 지역은 아직 '축제형'이나 '재현형'에 머물러 있다.
정책의 예측불가능성 또한 변수로 작용한다. 과거 사드(THAAD) 사태에서 드러났듯이, 한중 문화 교류는 언제라도 지정학적 긴장감 속에서 중단될 가능성이 있다. 이번 무비자 확대 조치 역시 중국 경제와 글로벌 정치 지정학 변화에 따른 중국 정부의 단기적 정책 전환일 수 있으며, 향후 정치적 갈등 상황이 재현된다면 '한한령(限韓令)'이라는 제재의 칼은 언제든 다시 등장하게 될 것이다.
결국 이러한 위험을 극복하는 해법은 '위험관리형 공생'에서 찾아야 한다. 양국 정부와 기업, 서울 및 상하이와 같은 한류 주체 도시의 구성원들이 현재의 한류 재부흥이 가져올 긍정적인 미래를 함께 확인하고 그것을 발전시키기 위해 상호 간 노력을 지속해야 한다. 정부는 국가 간 무비자 정책과 저작권 보호 체계를 더욱 명확히 정비하고, 민간 기업들은 단기적인 흥행보다는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공동 제작·투자 모델로 위험을 분산해야 한다. 콘텐츠 제작자들도 기존의 '수출에서 관광으로' 이어지는 단순한 구조를 벗어나 현지 문화와 공존하고 함께 발전할 수 있는 복합적 콘텐츠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순풍이 불고 있는 현재, 당장 중국 내 한류의 지속가능성을 단정 지을 수는 없다. 그러나 이 순간 난징루를 걷는 한국인 여행자의 발걸음에는 '장벽'이 아닌 '소통'의 느낌이 흐르고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이 소통의 물결이 계속 이어질 수 있도록 정부, 기업, 시민 모두가 한 박자씩 보조를 맞추는 것이다. 다시 찾아온 기회, 이제는 앞으로만 나아갈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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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L. 02 3150 4818/4821
FAX. 02 3150 4872
E-Mail. research@kofice.or.kr
발행처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후원 문화체육관광부
기획·편집 김아영, 김정현
디자인 7의감각
발행일 2025년 7월 22일
E-ISSN 2714-0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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