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간 지속된 한한령이 해제 조짐을 보이면서 중국 내 한류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한류의 부활은 베이징과 상하이에서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정치의 도시 베이징에서는 여전히 통제와 검열이 강화되고 있는 반면, 경제의 도시 상하이에서는 한국 관광객이 급증하며 한류 소비가 활발해지고 있다. 두 도시의 극명한 차이는 한류의 새로운 생존 지도를 그려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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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한령의 경과와 2024년 중국 정책 변화의 의의
2016년 7월 한국 정부의 사드(THAAD) 배치 결정은 한중간 문화교류에 큰 변곡점을 가져왔다. 중국은 사드 배치를 자국 안보에 대한 거대한 위협으로 간주하며 K-콘텐츠 수입 금지, 한국 연예인 방송 출연 제한, 한국 게임 판호 발급 중단 등 이른바 '한한령'을 전방위적으로 시행했다. 이러한 조치는 곧이어 롯데, 삼성, 현대자동차 등 한국 기업들에 대한 불매운동과 규제 강화로 확산됐고, 중국 국민의 한국행 단체 관광도 대폭 축소되면서 한국의 관광 산업 또한 직격탄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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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드 배치 이후 한국 물품 불매운동을 벌이는 중국인들 (출처: 바이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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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결과 한때 800만 명에 달하던 중국인 관광객 수는 반토막이 났고, 한국 화장품, 식품, 의류 등 소비재 수출 또한 큰 타격을 받아 기업들은 동남아 등 대체시장 개척에 나서야만 했다. 당시 한국 문화에 대한 중국의 제재 조치는 냉혹한 국제정세 속에서 외교적 긴장이 발생할 때마다 문화산업에 가져오는 불안정성이 얼마나 큰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됐다.
하지만 중국 정부의 단호한 조치에도 불구하고 이미 중국 대중들의 의식에 깊이 뿌리내린 K-콘텐츠에 대한 관심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다. 공식적인 경로가 차단된 상황에서도 웨이보, 빌리빌리 등 SNS를 중심으로 K-콘텐츠에 대한 팬덤 활동은 여전히 활발했고, 어둠의 경로를 통한 K-콘텐츠 불법 시청은 오히려 그 이전보다 더 늘어났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지난 2024년 11월, 중국 정부는 한국을 포함한 일부 국가에 대해 15일 무비자 입국을 허용하는 조치를 전격 발표했다. 이는 중국의 '제로 코로나' 정책 종료 후 침체된 내수 경제 회복을 위한 조치로, 그간 대외 개방에 소극적이던 중국이 개방적 태도로 전환하는 매우 의미 있는 변화였다. 특히 이번 무비자 혜택을 본 많은 국가 가운데 한국인 관광객 수가 크게 급증하면서 상하이, 광저우, 청두 등 대도시 중심으로 관광 소비가 빠르게 회복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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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무비자 정책 후 급증한 중국행 여행객들 (출처: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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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동시에 중국 중앙정부의 문화정책 기조에도 점진적인 변화들이 감지됐다. 2025년 4월 시진핑 주석은 "문화교류는 양국 관계에 있어 매력적인 부분"이라 언급하며 문화교류에 대해 전략적 활용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 최근에는 일부 케이팝 공연이 정식 허가를 받아 개최되고 있으며, 지방정부 차원에서는 한국 연예인의 광고 출연이나 팬미팅 등과 같은 소규모 행사 허용 등 유연한 대응이 이루어지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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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현재의 흐름이 곧바로 한한령의 전면 해제를 의미한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실상 한국 드라마의 중국 내 OTT 서비스 비중은 2016년 대비 여전히 70% 이상 대폭 줄어든 상태이고, 허가를 취득한 드라마들도 대부분 한한령 이전 작품들이다. 또한 글로벌 시장을 호령하고 있는 케이팝 아티스트들의 공연은 언제쯤에나 허용될지 아직은 그 전망이 매우 불투명하다. 개혁·개방 이래 중국 정부는 '문화 안보'라는 프레임 아래 외래 콘텐츠를 매우 강력하게 통제하고 있으며, 상황에 따라 언제든 교류 확대 조치가 후퇴할 수 있다는 정치적 불확실성이 늘 상존하고 있다.
지역별 수용 태도의 문화적, 정책적 배경
중국의 대표적인 두 도시인 상하이와 베이징은 한류 수용에 있어 각기 다른 문화정체성과 정책적 맥락을 갖는다. 상하이는 과거 외국 열강에 의해 강제로 개방된 조계지 시절부터 줄곧 국제교류의 중심지로 기능해 왔으며, 외국 문화를 흡수하고 소비하는 데에도 매우 익숙한 도시이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으로 인해 상하이는 과거로부터 축적된 개방성과 실용성을 바탕으로 외래 문화를 유연하게 수용하는 특성을 보이며, 이는 현재 한류 콘텐츠 수용 양상에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
반면 베이징은 중화사상의 중심지이자 체제 이념의 본산으로서, 문화정책에서도 훨씬 더 신중하고 보수적인 태도를 견지한다. 외국에서 유입되는 콘텐츠는 단순한 오락거리가 아닌 사상적·정치적 검토 대상으로 간주되며, 수용보다는 통제를 우선시하는 경향을 보인다.
문화 검열 기준 또한 두 곳이 다르게 적용된다. 상하이에서는 외국 기업 유치와 도시 경쟁력 확보를 이유로 한류 관련 이벤트나 매장이 비교적 자유롭게 운영되는 반면, 베이징은 사전심의와 정치적 정당성 확보가 필수 조건으로 작용한다. 지방정부와 중앙정부 간의 온도 차 역시 두드러진다. 상하이시 등 일부 도시 정부는 한류를 지역 경제 발전의 기회로 보고 실용적으로 접근하고자 하지만, 중앙정부는 사회 통합과 이념 유지 차원에서 보다 더 신중한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1) 상하이: 개방적 도시의 한류 수용과 관광 문화
상하이는 2024년 무비자 정책 시행 이후 한국 관광객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중국 도시 중 하나로 부상했다. 2025년 1분기 상하이를 방문한 한국 관광객 수는 누적 20만 명을 돌파하며 전체 1위를 기록했다. 특히 20~30대 젊은 층을 중심으로 '주말 상하이 여행'이 유행처럼 번지면서, 다양한 먹거리와 쇼핑, 도심 문화를 체험하는 트렌드가 확산됐다. 실제로 부산-상하이 노선은 1년 전 대비 115% 이상, 서울발 항공편도 46.9% 증가해 하루 40편 이상의 직항이 운항되고 있다.
상하이 시정부는 관광객 유치에 적극적으로 나서며 한국어 안내문과 맞춤형 서비스를 도입했다. 일부 식당과 상점의 한국인 방문 비율이 15%를 넘을 정도다. 치맥, 삼겹살, 부대찌개 등 한식당이 큰 인기를 끌고 있으며, 젠틀몬스터, 탬버린즈 같은 한국 브랜드 플래그십 스토어들이 속속 들어서고 있다. 특히 체험형 오프라인 매장들은 중국의 대형 인플루언서의 SNS를 통해 널리 공유되며 현지 젊은 세대 사이에서 핫플레이스를 뜻하는 ‘다카디엔(打卡点)’, 인기 맛집이라는 뜻의 ‘비츠방(必吃榜)’이 인기 순위 상위에 오르는 등 명소로 자리 잡았다. 상하이는 전통적으로 경제 활성화와 도시브랜드 제고를 위해 해외 기업과 외국인 관광객 유치에 적극적이었고, 최근에는 중앙정부의 변화된 기조에 맞춰 한류를 도시 경쟁력 강화 자산의 일부분으로 활용하고자 하는 모습을 뚜렷하게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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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상하이의 젠틀몬스터, 템버린즈 플래그십 스토어 (출처: 젠틀몬스터·탬버린즈 홈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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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베이징: 제한 속 ‘틈새’ 한류의 생존과 전개 베이징은 중국의 수도이자 정치·이념 중심지로, 중앙정부의 정책 기조를 가장 충실히 반영하는 도시이다. 한한령 시행 이후 K-콘텐츠 유통이 사실상 거의 중단된 상태를 유지해왔고, 최근까지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다만 팬덤을 중심으로 한 비공식 소비는 여전히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으며, MZ세대를 중심으로 SNS와 온라인 스트리밍, 팬카페, 커버댄스 등의 형태로 제한된 환경 속에서도 암암리에 K-콘텐츠는 지속적으로 대중적 지지를 받아왔다.
2024년 이후 무비자 조치로 인적 교류는 과거에 비해 소폭 확대됐으나, 베이징에서의 K-콘텐츠 관련 공식 활동은 여전히 제한적이다. 일부 굿즈샵, 팬미팅, 케이팝 커버 공연 등이 진행되고 있으나, 이는 대부분 한국과 무관한 현지 업체가 소규모로 개최하는 것에 그치고 있다. 일례로 2025년 1월 베이징 차오양구(朝阳区)에서 열린 '케이팝 라이브 순회 콘서트'는 한국 아이돌 대신 중국인 출연진이 뉴진스, 에스파, 블랙핑크, 엑소 등의 곡을 커버하는 무대로만 구성되었다. 입장권이 한화 10만 원을 넘었음에도 공연장에는 수천 명의 팬들이 몰려들었다. 이 공연이 중국인 주최라는 점을 이용해 정부 단속을 피했다는 사실은 현지 케이팝 팬들의 뜨거운 열기와 동시에 중앙정부의 강력한 검열 시스템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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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월,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케이팝 라이브 순회 콘서트’ (출처: 活动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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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는 외국 가수의 대형 콘서트나 해외 드라마와 같이 중국 국민 정서에 조금이라도 영향을 줄 수 있는 콘텐츠는 중국의 사전 검열과 정치적 민감성 심사를 반드시 통과해야만 한다. 2023년 중국은 '문화 집행관'이라는 조직을 신설하여 공연, 전시, 방송 등 문화 활동 전반에 대한 관리를 더욱 강화하였다. 그러나 베이징의 젊은 세대는 다양한 우회 경로를 통해 한류를 향유하려는 시도를 지속하고 있다.
지역적 수용 차이와 한류 재도약의 조건
2024년 이후 중국 내 한류의 재부상은, 지역별로 차별화된 수용 태도와 문화적 조건 위에서 전개되고 있다. 상하이처럼 개방적이고 국제화된 도시는 이미 한류 소비가 빠르게 회복되며 문화적 접점이 확대되고 있는 반면, 베이징과 같은 정치 중심지는 여전히 통제와 검열 속에 제한적인 수용만 허용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한국 문화산업의 중국 진출은 더 이상 과거와 같은 '전국 단일시장' 접근으로는 효과를 보기 어렵다. 각 도시의 문화정체성, 소비트렌드, 정책 환경을 고려한 맞춤형 지역 전략이 필수적이다. 예를 들어 상하이나 광저우는 관광과 소비 중심의 K-브랜드 확산에 집중하고, 베이징은 정치 민감성이 낮은 분야, 예컨대 패션, 푸드, IP 협업 등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이처럼 지역 분화된 수용 양상에 민감하게 대응하는 전략이 향후 한류의 안정적 재진입과 지속 확산을 위한 열쇠가 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현재의 문화 개방 흐름은 아직 완전한 한한령 해제를 의미하지 않는다. 2024년 무비자 입국 조치와 2025년 APEC 정상회의 개최를 계기로 한중 문화교류 확대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으나, 중국 중앙정부는 여전히 콘텐츠 유통과 공연 활동에 대한 강력한 통제 기조를 유지하고 있으며, 케이팝 공연이나 드라마 방영 재개는 ‘예외적 허용’의 형태로만 간헐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비록 2024년부터 계속 점층적으로 이어지고 있는 시진핑 주석의 문화교류 강조 발언, 무비자 입국 허용, 일부 공연 및 한국계 굿즈샵의 공식 승인 등은 중국 중앙정부의 정책 기조 완화와 제도 전환의 전조로 해석할 수도 있으나, 여전히 신중한 관찰이 필요하다는 것이 많은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이다. 실제로 2025년 5월 31일에 중국 푸저우시(福州)에서 개회 예정이었던 케이팝 아이돌 그룹 이펙스(EPEX)의 공연이 '현지 사정'이라는 모호한 이유로 갑자기 취소된 사례만 봐도, 중국 당국의 문화정책이 정치적 상황에 따라 언제든 달라질 수 있다는 현실은 아직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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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5월 개최 예정이었던 ‘EPEX 콘서트’ 포스터 (출처: X(@EPEX Officia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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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향후 중국 시장에서 한류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서는 중국의 경제적 필요성과 문화적 경계심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는 전략 수립이 핵심 과제라 할 수 있다. 중국 정부가 최근 내수 진작을 위해 관광객 유치에 적극 나서고 있는 점을 활용해 단계적 개방을 유도하는 동시에, 디지털 콘텐츠 유통망 다각화, 현지 파트너십 강화 등을 병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난 9년간의 한한령 경험을 교훈 삼아 한류가 더 이상 정치·경제적 변수에 흔들리지 않도록 다층적 문화교류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한 시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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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L. 02 3150 4818/4821
FAX. 02 3150 4872
E-Mail. research@kofice.or.kr
발행처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후원 문화체육관광부
기획·편집 김아영, 김정현
디자인 7의감각
발행일 2025년 7월 22일
E-ISSN 2714-0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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