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의 걸그룹이 현실 차트를 점령했다. 전 세계 31개국 넷플릭스 1위를 기록한 <케이팝 데몬 헌터스(이하 케데헌)>는 케이팝 역사상 전례 없는 성과를 거머쥐었다. 애니메이션 속 캐릭터가 부른 노래가 미국 '빌보드 핫 100' 차트 1위, 영국 '오피셜 싱글' 차트 1위에 오르고, 8월 23~24일 북미 1,700개 극장에서 진행된 특별 상영회는 단 이틀 만에 엄청난 수익을 거두어들이며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이는 3,200개 이상 극장에서 상영된 기존 영화들을 제치고 달성한 기록으로, OTT 플랫폼을 넘어 극장가까지 장악하는 전방위적 성공을 보여줬다.
케이팝 걸그룹 헌트릭스(HUNTR/X)가 악령 보이그룹 사자 보이즈(Saja Boys)와 대결하며 세계를 구하는 이야기는 OST <골든(Golden)>으로 빌보드 메인 앨범 차트 2위까지 기록하며, 갓을 쓴 사자와 작호도에서 튀어나온 듯한 호랑이 캐릭터가 전 세계 팬들의 사랑을 받는 현상을 만들어냈다. 이는 케이팝이 음악에서 애니메이션으로 진화하며 '메타 장르(meta-genre)'*로 확장한 새로운 한류의 상징적 사건이 되었다. 음악·서사·시각예술·퍼포먼스·팬덤 참여를 모두 아우르는 형태로 발전한 것이다. *단일 장르의 경계를 넘어 다양한 문화 형식과 매체를 포괄하며 확장 가능한 문화콘텐츠 형태
이 성공은 케이팝산업의 새로운 확장 가능성을 예고하는 신호탄이 될 수 있을까? <케데헌>의 성공 사례를 통해 케이팝과 애니메이션 융합의 새로운 콘텐츠 모델을 분석하고, 이것이 케이팝산업의 미래에 갖는 의미를 살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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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데헌>의 전례 없는 성과와 새로운 융합 모델
1) OST 빌보드 차트 석권의 의미
<케데헌>의 OST 대표곡 <골든>이 빌보드 핫100 1위에 오른 것은 단순한 흥행을 넘어선 문화적 전환점으로 평가된다. 특히 OST 8곡이 빌보드에 동시 진입하고, OST 앨범이 '빌보드 200' 차트 1위를 석권한 것은 애니메이션 OST 역사상 전례 없는 성과로, 이는 가상 아티스트의 음악이 현실의 글로벌 차트에서 주목받을 수 있음을 증명한 최초의 사례로 기록됐다.
기존 애니메이션 OST들이 대부분 작품의 부수적 요소로 취급되어 개별 곡들이 주목받기 어려웠던 것과 달리, <케데헌>은 음악 자체가 작품의 핵심 동력으로 작용했다. 이는 디즈니의 <겨울왕국> OST 앨범이 빌보드 200에서 1위를 기록한 이후의 첫 성과로, 특히 <케데헌>은 애니메이션과 음악이 동시에, 그리고 각각 독립적으로도 성공을 거두며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더욱 크다.
주목할 점은 헌트릭스라는 가상의 걸그룹이 실제 아티스트들과 동등한 수준에서 경쟁하며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었다는 사실이다. 이는 케이팝이 물리적 실체를 넘어 순수한 '콘텐츠 파워'만으로도 글로벌 시장에서 인정받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팬들은 헌트릭스의 멤버들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음을 알면서도 그들의 음악에 열광했고, 이는 케이팝의 본질이 특정 인물보다는 음악적·문화적 코드에 기반하고 있음을 입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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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팝 데몬 헌터스> 여자 아이돌 그룹 헌트릭스(출처: 넷플릭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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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한국 프로듀서 및 아티스트 참여의 산업적 의미
<케데헌>에서 블랙핑크를 프로듀싱했던 테디를 비롯한 한국 음악 제작진의 참여는 케이팝산업의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제시한다. 소니 픽처스가 제작하고 넷플릭스가 배급한 이 작품에서, 감독은 매기 강(강민지)과 크리스 아펠한스가 맡았지만, 이 애니메이션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음악은 케이팝 프로듀서 테디(박홍준)의 더블랙레이블(The Black Label)이 주도했다. 전통적으로 애니메이션 OST 제작이 대부분 현지 작곡가의 영역이었다면, 이제는 케이팝 프로듀서들이 글로벌 애니메이션 프로젝트의 핵심 파트너로 자리매김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번 협업은 기존 영화나 드라마 OST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특성을 보인다. 일반적으로 OST는 영상의 감정을 뒷받침하는 배경음악 역할에 머물렀지만, <케데헌>의 케이팝 OST는 작품의 서사와 캐릭터를 독립적으로 구축하는 동시에 별도의 음악적 세계관을 창조했다. 헌트릭스와 사자 보이즈의 음악은 애니메이션을 보지 않은 사람들도 음악만으로 즐길 수 있을 정도의 완성도를 지녔으며, 이는 OST 개념의 외연을 확장하는 사례로 평가된다.
한국 음악산업 측면에서는 이번 사례를 통해 새로운 수익 창출의 기회를 확인해 볼 수 있다. 기존 케이팝 비즈니스가 음반 판매, 콘서트, 굿즈 등에 집중했다면, 애니메이션 OST 참여는 글로벌 OTT 플랫폼의 광범위한 시청자층에 직접 접근할 수 있는 문을 열었다. 특히 넷플릭스를 통해 한국 음악이 언어와 문화적 장벽 없이 전달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는 케이팝 확산의 새로운 채널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크다.
3) 메타 장르로서의 애니메이션으로의 확장
케이팝이 '메타 장르'가 되었다는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케이팝은 이미 단순 음악을 넘어 확장 가능한 복합 콘텐츠로 기능하고 있으며, 애니메이션은 이러한 확장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되었다. <케데헌>은 다수의 한국 아티스트 및 음악 관계자들이 참여한 프로젝트로, 한국의 케이팝 문화를 핵심으로 하여, 시각적 세계관의 형상화와 서사적 몰입이 결합된 새로운 융합 모델을 제시하였다.
애니메이션은 케이팝이 가진 물리적·현실적 제약을 뛰어넘는 새로운 표현의 가능성을 제공했다. 실사 뮤직비디오나 공연에서는 구현하기 어려운 초현실적 세계관과 초자연적 액션을 애니메이션을 통해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케데헌>에서 헌트릭스가 사인검과 월도를 휘두르며 악령을 퇴치하는 장면이나, 사자 보이즈가 저승사자의 모습으로 등장하는 시퀀스는 실사로는 불가능한 무제한적 세계관 구축의 대표적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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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팝 데몬 헌터스> 여자 아이돌 그룹 헌트릭스의 원형(출처: 넷플릭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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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팬덤의 참여형 문화와 새로운 확산 메커니즘
1) 한국적 상징의 번역 시도: 시각적 문화 코드와 공감
<케데헌>의 성공은 한국의 전통적 시각 코드인 '갓'과 '작호도'를 보편적 언어로 번역하고자 한 세심한 노력에도 있다. 특히 헌트릭스와 사자 보이즈의 시각적 상징, 특히 ‘갓’과 ‘호랑이와 까치(호작도)’에서 극명히 드러난다. 갓은 조선 시대 선비의 품격과 절제를 상징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현대적 맥락에서 새로운 의미를 획득한다. 서구 관객에게 갓은 처음엔 사이버펑크적인 독특한 액세서리로 보일 수 있지만, 이러한 시각적 이질성은 오히려 글로벌 시청자들의 '낯선 호기심'을 자극했다.
사자 보이즈의 검은 도포와 갓은 저승사자의 전통적 이미지를 재해석하며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넘나드는 신비로운 권위를 부여한다. 갓의 망사는 현실과 초월적 세계를 연결하는 결계로, 사자 보이즈가 무대에서 관객의 영혼을 사로잡는 오컬트적 매력을 강화한다. 헌트릭스의 의상에 달린 노리개와 단청 문양은 전통적 아름다움을 현대적 감각으로 풀어내며, 그들의 무속적 정체성을 시각적으로 구현한다. 결국 갓은 '소명을 품위 있게 수행하는 자'의 아이콘으로 재탄생하여 지역적 특수성을 초월한 세계인의 보편적 상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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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 보이즈의 갓과 도포, 헌트릭스의 노리개 장식(출처 : 넷플릭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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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작도의 호랑이 '더피(Derpy)'와 까치 '서씨(Sussie)'는 조선 후기 민화에서 영감을 받은 캐릭터로, 까치(기쁜 소식의 전령)와 호랑이(액운을 물리치는 수호신)의 부적적 기능을 계승한다. 더피는 푸른 오라를 뿜으며 악령을 쫓는 중립적 존재로, 산신의 현신처럼 강력한 영적 힘을 지닌다. 서씨는 세 쌍의 눈과 뾰족한 이빨로 요괴적 매력을 더하며, 전통 까치의 길조 이미지를 현대적이고 기묘한 존재로 재탄생시켰다. 이들은 진우와 루미에게 편지를 전달하는 전령으로, 이승과 저승을 잇는 메신저 역할을 수행한다.
더피의 사시눈과 어설픈 행동(화분을 세우려다 실패하는 장면)은 민화 속 호랑이의 익살스러운 이미지를 충실히 반영하며, 팬들에게 사랑받는 신스틸러로 자리 잡았다. 서씨의 세 쌍의 눈은 삼성 갤럭시 카메라 렌즈를 연상시키며, 전통과 현대의 융합을 상징한다. 호랑이는 동서양에서 힘과 용맹의 상징이지만, 까치와의 조합은 조화와 균형이라는 동아시아적 지혜를 더한다. 팬들은 이를 통해 힘(호랑이)과 희망(까치)의 결합이라는 메시지를 직관적으로 느낀다. 이 과정은 한국적 상징이 인류 보편적 원형으로 승화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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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피(호랑이)와 서씨(까치)와 호작도(출처: 넷플릭스, 국립중앙박물관 홈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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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상징들은 단순한 마스코트나 장식이 아니라, 헌트릭스가 악령을 봉인하는 '혼문(Honmoon)'의 서사와 연결되며 한국의 문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핵심 장치로 기능한다. 국립중앙박물관의 호작도 배지가 품절될 정도로 팬들이 열광한 것은 이 상징들이 단순한 굿즈를 넘어 문화적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살아있는 코드'이기 때문이다. 이는 케이팝 굿즈 소비 문화의 근본적 변화를 가져왔다. 과거 케이팝 굿즈가 아티스트의 사진이나 로고 중심이었다면, <케데헌>은 갓, 호작도 등 한국 전통 시각문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굿즈화함으로써 전통과 대중문화의 접점을 만들어냈다. 특히 해외 팬들이 한국 전통 문화 요소가 담긴 굿즈를 구매하고 SNS에 공유하면서, 케이팝 팬덤은 단순한 음악 소비 집단에서 '한국 문화 전파자' 역할로 진화했다고 볼 수 있다.
2) 참여형 팬덤 문화의 진화
팬들이 '<골든> 노래 부르기 챌린지', '<소다 팝> 댄스 챌린지' 등으로 이 춤을 따라 하고 공유하는 행위는 단순한 모방을 넘어 집단적 에너지를 생성하는 문화적 활동에 동참하는 과정이다. 이들은 수동적 소비자가 아니라, 춤과 노래를 통해 문화적 가치를 함께 창조하는 '문화적 수행자(cultural performer)'**로 참여하고 있다. **문화콘텐츠를 단순히 소비하는 것을 넘어 적극적으로 재해석하고 확산시키며, 새로운 의미를 창조하는 능동적 참여자
<케데헌>이 만들어낸 팬덤은 기존 케이팝 팬덤과 애니메이션 팬덤의 경계를 허무는 새로운 형태를 보인다. 특히 주목할 점은 온라인 참여가 오프라인 집단 경험으로 확장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8월 23~24일 이틀간 레갈(Regal), 시네마크(Cinemark) 등 전국 극장에서 '케이팝 데몬 헌터스 싱어롱 이벤트(K-Pop Demon Hunters Sing-Along Event)'가 개최되어 팬들이 OST를 따라 부르고 대사와 안무를 실시간 재현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됐다. 이벤트 형식의 상영회였음에도 단 이틀만에 북미 극장가를 장악했다. 북미 1,700개 관에서 매출액 1,800만 달러를 기록한 것이다. 이 뿐만 아니라 오하이오 주의 한 롤러스케이트장에서 열린 '케이팝 데몬 헌터스 네온 파티(K-Pop Demon Hunters Glow Party)'처럼 네온 조명과 함께 케이팝 음악을 배경으로 한 체험형 이벤트들도 확산되며 <케데헌>의 인기가 고조되고 있다.
글로벌 플랫폼에서의 확산 메커니즘도 변화하고 있다. 레딧을 중심으로 한 글로벌 팬 커뮤니티에서는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케이팝 팬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K-Pop Demon Hunters is not just for K-pop fans)"라는 공감대가 확산되며, 애니메이션, 소설 등 다양한 장르의 팬들이 작품을 재해석하고 공유하고 있다. 틱톡이나 인스타그램에서는 팬들이 헌트릭스의 사인검을 흉내낸 소품을 들고 춤을 추거나, 갓을 쓰고 사자 보이즈 스타일을 재현하는 등 시각적 요소가 강화된 참여형 콘텐츠가 활발히 생산되고 있다. 주목할 현상은 팬아트, 밈, 커버 댄스, 자막 번역 등의 2차 창작물이 SNS에서 활발하게 확산되며, 콘텐츠가 완결된 이후에도 자생적 생태계가 유지·확장되고 있다는 점이다.
넷플릭스는 이러한 현상을 더욱 가속화했다. <케데헌>은 넷플릭스를 통해 시차 없이 전 세계 190개국에서 동시에 공개되며, 공개 이후 9월 현재까지 2억 9,150만회 뷰를 기록하였고 영어 애니메이션 중 최다 시청작이 되었다. 넷플릭스를 통해 작품을 접한 팬들은 실시간으로 반응을 공유하며, 24시간 내내 지구 어딘가에서 관련 콘텐츠가 생산되고 소비되는 순환구조를 만들어냈다. OTT 플랫폼을 중심으로 형성된 실시간 글로벌 참여는 팬들의 후속작, 뮤지컬, TV 시리즈 확장 요구로까지 이어지면서 한류의 새로운 확산 모델로 자리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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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팝 산업의 새로운 확장 전략과 미래 전망
<케데헌>의 성공은 케이팝이 음악 장르를 넘어 애니메이션이라는 시각적·서사적 플랫폼을 통해 글로벌 문화콘텐츠로 진화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 가장 주목할 변화는 엔터테인먼트 기업들이 애니메이션을 핵심사업 영역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애니메이션을 통한 케이팝 아티스트 IP 확장은 무한한 가능성을 내포한다. 실제 아티스트들의 캐릭터화를 통해 현실의 제약을 뛰어넘는 다양한 세계관을 구축할 수 있으며, 이를 기반으로 음악뿐만 아니라 게임, 웹툰, 굿즈 등으로 확장 가능한 통합 IP 생태계가 구축되고 있다. 특히 군 입대나 개인적 사정으로 활동이 중단되는 경우에도 애니메이션 캐릭터는 지속적으로 팬들과 만날 수 있어 실질적 효과가 크다. 수익모델도 다변화되고 있다. 전통적인 앨범 판매와 공연 수익에 더해, 애니메이션 스트리밍 수익, 캐릭터 라이선스, 게임 협업 등 디지털 자산 기반의 새로운 수익원이 부상하고 있다.
향후 케이팝×애니메이션 융합 콘텐츠는 실제 아티스트의 개성을 반영한 맞춤형 시리즈, 팬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쌍방향(interactive) 애니메이션, AI 및 VR/AR 기술을 활용한 몰입형 콘텐츠로 발전할 것이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캐릭터화를 넘어선 독창적인 스토리텔링과 음악적 완성도 확보가 필수적이다.
<케데헌>이 보여준 것은 케이팝이 음악에서 출발해 애니메이션으로 확장하며 전 세계 팬들과 만나는 새로운 한류 패러다임이다. 가상과 현실의 경계를 허물고, 전통과 현대가 조화를 이루는 이 혁신적 실험은 케이팝의 무대가 단순한 음악산업을 넘어 무한한 문화적 상상력의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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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L. 02 3150 4818/4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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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처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후원 문화체육관광부
기획·편집 이현지, 김정현
디자인 7의감각
발행일 2025년 9월 23일
E-ISSN 2714-0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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